영원히 산다는 것의 무게
불멸의 전사들.
넷플릭스에서 〈올드 가드〉 틀었을 때 기대한 건 화려한 액션이었다.
샤를리즈 테론이 도끼 들고 싸우는 건 당연히 봐야한다. 언니 최고.
그런데.
이 영화는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액션보다 훨씬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수천 년을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사랑하는 사람이 계속 죽고, 나만 남는다면?
앤디(샤를리즈 테론)의 첫 장면부터 느낌이 달랐다.
그의 눈에서 피로가 보였다. 액션 히어로의 눈이 아니라, 너무 오래 살아버린 사람의 눈이었다.
죽지 못하는 사람들
앤디는 수천 년을 살았다. 정확히 얼마나 오래인지도 모른다.
팀은 네 명. 앤디, 부커(마티아스 쇼나에르츠), 조(마르완 켄자리), 니키(루카 마리넬리).
이들은 상처를 입어도 금방 회복된다.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
조와 니키가 특히 흥미로웠다. 십자군 전쟁 때 처음 만났다. 서로 죽이려고 칼을 겨눴는데, 둘 다 계속 되살아났다.
그렇게 수백 년을 함께 살게 됐다. 적에서 연인으로.
이 설정 자체가 영화의 핵심을 말해준다. 불멸은 고독하다. 그래서 서로가 필요하다.
영화 중간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모두 죽는다. 우리만 남는다."
딱 한 줄인데 전율이 왔다.
부커의 고통
부커 이야기가 가장 아팠다.
나폴레옹 전쟁 시대 사람. 가족이 있었다. 아내, 아들들.
불멸이 된 후 가족과 함께 살았는데... 자기만 안 늙는다.
아들이 늙어가고, 손주가 태어나고, 결국 다들 죽는다.
"내 아들이 날 '아빠'라고 부를 수 없었다. 나이가 똑같아 보였으니까."
부커는 매일 죽으려고 시도한다. 바다에 뛰어들고, 총을 머리에 대고, 칼로 심장을 찔러본다.
소용없다. 계속 살아난다.
그래서 배신한다. 불멸을 끝낼 방법을 찾기 위해서.
이 캐릭터를 보면서 생각했다. 악당이 아니다. 그냥 너무 지쳐버린 인간이다.
새로 합류하는 닐(킥 레인)의 시선을 통해 우리도 이 세계를 배운다.
아프가니스탄 해병이던 그는 전투에서 죽었다가 되살아난다.
혼란스럽다. 당연하다.
앤디가 찾아와서 설명한다.
"이유는 모른다. 우리도 모른다. 그냥... 이렇게 됐다."
거창한 설정 같은 건 없다. 신의 선택도, 우주의 계획도 아니다.
그냥 어느 날 불멸이 됐고, 그래서 계속 싸운다.
왜 싸우냐고 닐이 묻는다.
"선택이야.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만들기 위한."
의미는 스스로 만드는 거였다.
샤를리즈 테론이라는 존재감
액션은 물론 대단하다.
도끼 휘두르는 장면, 좁은 공간에서의 격투, 기차 전투 시퀀스.
모두 날카롭고 잔인하다.
하지만 테론의 진짜 연기는 조용한 순간에 있었다.
중반부에 앤디가 부상을 입는다. 치유가 안 된다. 불멸이 끝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팀원들이 놀란다. 보호하려고 한다.
앤디는? 오히려 차분하다. 어쩌면 안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드디어 끝날 수 있다는 안도감.
수천 년의 피로가 그의 얼굴에 새겨져 있었다.
앤디는 팀에게 보여준다.
과거에 자신들이 구한 사람의 후손이 백신을 개발했다는 걸.
그 백신이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했다.
"우리 행동은 파문을 만든다. 보이지 않아도 영향을 미친다."
결과를 못 볼 수도 있다.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계속한다.
이게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거 같다.
불멸은 저주지만, 동시에 기회다.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불멸의 의미
엔딩이 좋았다.
부커는 배신의 대가로 100년간 추방된다.
혼자 파리 아파트에서 술을 마신다.
문 두드리는 소리.
퀸이다. 수백 년 전 바다에 갇혀 죽지도 못하고 있던 불멸자.
부커와 앤디가 찾으려 했지만 실패했던 사람.
그가 돌아왔다.
영화는 거기서 끝난다.
속편을 암시하는 엔딩이지만, 동시에 완벽한 여운을 남긴다.
불멸자들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끝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게 불멸의 진짜 의미일지도.
〈올드 가드〉를 보고 나서 계속 생각했다.
만약 내가 영원히 산다면?
처음엔 좋을 것 같다. 모든 걸 경험할 수 있으니까.
근데 백 년쯤 지나면?
친구들이 다 죽고, 세상이 변하고, 나만 남는다.
외롭겠다.
이 영화의 답은 명확하다.
혼자면 저주다. 함께면 견딜 만하다.
가족. 그게 전부였다.
불멸이든 평범한 삶이든, 결국 중요한 건 옆에 누가 있느냐는 거.
액션 영화라고 틀었다가 생각보다 훨씬 많은 걸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