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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광한 영화 리뷰 – 청춘 18X2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

by lazypenguinclub 2025. 9. 15.
허광한 영화 리뷰 – 청춘 18X2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

첫사랑 아이콘에서 새로운 얼굴로

배우에게는 평생 따라다니는 얼굴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반항아의 얼굴로, 다른 누군가는 선한 이웃의 얼굴로 우리 기억 속에 남죠. 대만 배우 허광한을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은 아마 〈상견니〉의 ‘리쯔웨이’를 떠올릴 겁니다. 쨍한 햇살 아래 흰 교복을 입고 자전거를 타던 그 소년. 허광한이라는 이름은 어느새 우리 모두의 첫사랑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신작 소식을 들었을 때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궁금했습니다. 그는 과연 자신의 가장 빛나는 얼굴을 넘어,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영화 〈청춘 18X2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은 그 질문에 대한 허광한의 진솔한 대답처럼 느껴집니다. 영화는 성공한 게임 개발자이지만 어딘가 공허해 보이는 36살의 ‘지미’(허광한)로부터 시작됩니다. 회사를 떠밀리듯 나오게 된 어느 날, 그는 집 한구석에서 낡은 엽서 한 장을 발견합니다. 18년 전, 일본에서 온 배낭여행객 ‘아미’(키요하라 카야)가 보낸 엽서였습니다. 그 엽서는 잊고 있던 인생의 첫 페이지를 강제로 펼쳐 보입니다. 그렇게 지미는 아미의 고향을 찾아 무작정 일본으로 떠납니다.

두 개의 시간, 두 개의 얼굴

이 영화의 리뷰를 쓰기 어려운 이유는, 단순히 첫사랑을 찾아 떠나는 로맨스물로 규정하기엔 더 깊은 울림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18년의 시간을 능숙하게 오갑니다. 18살 지미가 있던 대만의 여름은 숨 막힐 듯 덥고 모든 것이 서툴지만 생기로 가득합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노래방에서 우연히 만난 아미에게 첫눈에 반하고, 그녀에게 일본어를 배우고 함께 오토바이를 타며 보내는 시간들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청춘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합니다. 반면, 18년이 흘러 36살이 된 지미가 여행하는 일본의 겨울은 모든 것이 차갑고 고요합니다. 혼자 기차를 타고, 눈 덮인 거리를 걸으며 그는 과거의 자신과 끊임없이 마주합니다.

이번 작품에서 허광한의 연기를 리뷰하는 것은 꽤 흥미로운 경험입니다. 그는 18살의 풋풋하고 어설픈 소년과 세상사에 지쳐버린 36살의 남자를 전혀 다른 사람처럼 연기합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그의 눈빛입니다. 18살 지미의 눈에는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좋아하는 사람을 향한 순수한 열망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반면 36살 지미의 눈은 많은 것을 이뤘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잃어버린 사람의 공허함과 쓸쓸함을 담고 있죠. 한 배우가 이토록 다른 두 시간의 얼굴을 섬세하게 표현해내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지미의 여정은 단순히 아미를 찾는 과정이 아닙니다. 그는 기차에서 만난 청년, 작은 식당의 주인, 눈 내리는 마을의 게스트하우스 직원 등 여러 인연을 스쳐 지나가며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잊고 있던 꿈과 열정을 발견합니다. "꿈을 이루고 나면 그 다음은 뭘까?"라는 식당 주인의 질문은 성공이라는 목표만을 향해 달려온 지미에게, 그리고 스크린을 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날아와 박히는 질문입니다. 그는 여행을 통해 자신이 왜 게임을 만들고 싶어 했는지, 그 시작점에 있던 순수한 마음을 다시금 되찾게 됩니다.

첫사랑을 넘어, 인생의 첫 페이지로

결국 이 영화는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이자, 인생의 길 위에서 잠시 방향을 잃은 모든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겐 모두 저마다의 ‘아미’가 있을 겁니다. 그게 첫사랑일 수도, 혹은 무모하지만 뜨거웠던 어떤 꿈일 수도 있습니다. 바쁘게 살아가느라 까맣게 잊고 지냈던 인생의 첫 페이지. 영화는 그 페이지를 다시 들춰보는 것이 결코 과거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과정임을 따뜻하게 보여줍니다.

이 영화 리뷰를 마무리하며, 저는 다시 배우 허광한을 생각합니다. 그는 〈상견니〉의 리쯔웨이라는 강력한 아이콘을 추억 속에 아름답게 남겨두고, 새로운 얼굴로 우리 앞에 섰습니다. 마치 영화 속 지미가 18년의 시간을 여행하며 진짜 자신을 찾아낸 것처럼 말이죠.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는 가끔 길을 멈추고, 나의 이야기가 처음 시작되었던 그곳으로 돌아가 볼 용기가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