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퍼스널 쇼퍼 - 누군가의 욕망을 삽니다

by lazypenguinclub 2025. 10. 17.
반응형

누군가의 욕망을 사는 일

〈퍼스널 쇼퍼〉를 봤다. 처음 30분은 뭔가 낯선 기분이 들었다.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연기하는 노라는 명품 구매대행인이다. 유명한 배우나 부자들을 위해 옷과 악세서리를 사주는 일을 한다.

초반부 영화는 노라가 파리의 명품점을 돌아다니는 장면으로 이루어진다. 이 장면들이 계속된다.

쇼핑백, 상품들, 가격표. 영화가 뭘 하려는 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는다. 이건 스릴러다.

노라의 일은 남들이 원하는 것을 사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취향으로 물건을 고르지 않는다.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

이 과정이 영화 전반을 지배한다. 명품점에서의 선택, 옷의 입혀봄, 가격 협상, 배송.

그런데 이 반복되는 쇼핑 장면이 어떤 시점부터 낯설어진다. 일상적인 장면이 점점 불안해 보인다.

노라는 자신의 욕망을 포기한 채 살고 있다. 남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노라에게는 또 다른 특성이 있다.

그녀는 영혼과 접촉할 수 있다고 믿는다. 죽은 오빠와 대화한다.

영화는 이것을 명시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일부러 모호하게 남겨둔다.

노라가 환청을 듣는 건가, 정말 영혼인가. 관객은 판단할 수 없다.

이 설정이 중요한 이유는 노라의 정체성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욕망 속에만 살고 있다. 클라이언트의 욕망, 죽은 오빠의 영혼(이라고 믿는 것).

자신의 욕망은 어디로 갔는가.

영화 중반부터 노라는 익명의 문자 메시지를 받는다.

내용은 점점 더 위협적이 된다.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본다는 식의 메시지.

노라는 경찰에 신고한다. 하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한다.

관객은 혼란스러워진다. 이 메시지는 진짜인가.

누군가 노라를 스토킹하는 건가. 아니면 노라가 자신을 만든 건가.

영화는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더 깊은 혼란으로 빠뜨린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거의 표정 변화 없이 연기한다.

마치 영화 속의 옷들처럼 자신의 감정도 입혀진 것처럼. 감정을 숨기고, 필요한 만큼만 드러낸다.

이런 절제된 연기가 영화의 불안감을 키운다. 관객은 노라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

파리를 돌아다니는 장면들에서, 노라의 얼굴은 공허해 보인다. 아무 것도 그녀를 움직이지 못한다.

이것이 스튜어트의 최고의 연기라고 생각했다. 최소한의 표현으로 최대한의 불안을 만든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현대 사회의 유령 같은 느낌을 받는다.

노라는 온라인으로 메시지를 받는다. 익명의 누군가와 대화한다.

그녀는 전화도 하지 않고, 실제로 만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이 화면 너머의 일이다.

이것이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이 현대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갖지 않는다. 우리는 화면 속의 타자들과만 존재한다.

노라도 그렇다. 클라이언트는 얼굴도 모르고, 받는 메시지는 익명이고, 죽은 오빠는 영혼이다.

모두가 유령처럼 그녀 주변을 맴돈다.

〈퍼스널 쇼퍼〉는 장르 구분이 애매한 영화다.

심리 드라마인가, 스릴러인가, 초현실주의 영화인가.

한 쪽에는 논리적인 범죄 스토리가 있다. 누군가가 노라를 스토킹한다는 설정.

다른 한 쪽에는 초현실적인 요소들이 있다. 영혼과의 대화, 모호한 정체성, 꿈과 현실의 경계.

이 두 가지가 충돌하면서 영화는 독특한 질감을 만든다.

관객은 논리적으로 이해하려고 하지만, 동시에 초현실적 요소에 빠져든다.

영화의 불안정성

영화의 구조가 불안정하다. 이야기가 선형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한순간 반전이 일어나고, 모든 것이 다시 해석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해석도 확실하지 않다.

이것이 의도적인가, 실수인가. 영화는 말하지 않는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은 관객을 안정감 없는 상태에 두고 싶은 것 같다. 노라처럼 우리도 불안정해야 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영화의 마지막은 중요하다.

노라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영화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처음엔 노라가 피해자처럼 보인다. 스토킹을 당하고, 메시지를 받는 피해자.

하지만 마지막에 가면, 노라 자신이 무엇을 욕망했는지 알게 된다.

그 욕망이 전부를 설명한다. 이제까지의 모든 장면들이 다시 해석된다.

노라는 누군가의 욕망을 사는 여자가 아니었다. 자신의 욕망을 숨기고 살던 여자였다.

파리는 영화 속에서 마치 거대한 쇼핑센터처럼 보인다.

아름답지만 냉정하고, 화려하지만 공허하다. 명품점의 유리창들, 거리의 인파, 지하철의 낯선 얼굴들.

모두가 자신의 욕망을 사고팔고 있는 도시. 노라도 그 도시의 일부일 뿐이다.

영화는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더 많은 질문을 남긴다.

노라는 누구인가. 그녀의 욕망은 무엇인가. 영혼과의 대화는 진짜인가. 익명의 메시지는 누구의 것인가.

이 질문들에 답할 수 없다. 영화는 그것을 알고도 답을 주지 않는다.

처음 30분간의 쇼핑 장면들도 다시 보면 다르게 느껴진다. 그것은 일상이 아니라, 노라의 정체성 상실을 보여주는 장면들이었다.

영화를 다시 본다면,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일 것 같다.

결론적으로 〈퍼스널 쇼퍼〉는 쉬운 영화가 아니다.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심리 드라마고, 심리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초현실 영화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은 현대 사회에서 정체성을 잃어버린 인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산다. 사회가 원하는 역할을 한다. 가족이 기대하는 모습을 한다.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욕망은 어디로 가는가. 그것을 잊어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이 영화는 그 질문을 던진다.

명쾌한 답을 주지는 않지만, 확실히 뭔가를 남긴다. 그것은 불안감이고, 질문이고,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다.

이 영화의 어떤 장면들은 자꾸만 떠오를 것 같다.

현대도시의 유리창들, 명품점의 조명, 그리고 공허한 표정의 여자. 누가 욕망을 사고 있는지, 누가 팔고 있는지 구분할 수 없는 세상.

그곳에서 우리는 누구인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