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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끝낼까 해 - 영화가 나를 속이고 있다..

by lazypenguinclub 2025.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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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 속에서만 살 수 있었던 남자

〈이제 그만 끝낼까 해〉를 봤다.

영화 내내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반복되는 문장이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처음엔 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다. 젊은 여자와 할아버지의 만남. 아름다운 시골, 따뜻한 감정, 뭔가 가슴 철렁해지는 로맨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여자의 기억이 자꾸 빠진다. 상황이 연결되지 않는다. 날씨도 다르고, 공간도 다르다.

영화가 우릴 속이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감독은 처음부터 말해줬다. 할아버지 모습에서 갑자기 제이크 뒷모습으로 바뀌는 장면. 둘이 같은 사람이라는 거.

하지만 우린 그냥 지나쳤다. 사랑 이야기에 빠져서 영화에 속아서.

제이크는 학교 청소부다. 아무도 그를 안 본다. 학생들은 그를 투명인간처럼 본다. 아니, 놀린다.

학교 복도를 걸어가는데 여학생들이 그의 걸음걸이를 따라하며 비웃는 장면이 있다. 그게 얼마나 끔찍한지.

그의 꿈은 물리학자였을 거다. 뮤지컬 지식도 많고, 철학적인 생각도 깊고, 음악과 물리학에 대해 아는 것도 많다. 근데 현실은 다르다.

아마 부모를 돌봐야 했던 거 같다. 아픈 어머니, 치매에 걸린 아버지. 그들을 돌보느라 자신의 청춘을 다 쓴 거다. 물리학자의 꿈도, 누군가와의 관계도 없이.

그냥 생계를 위한 청소부의 삶만 남았다.

여자는 누구인가

여자는 이름이 없다. 계속 이름이 바뀐다.

루이사, 그 다음엔 다른 이름. 제이크가 상황에 맞춰 지어주는 거다. 매번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낼 때마다.

여자의 기억은 항상 흐릿하다. 지난 일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자기가 뭘 했는지도 모르고, 제이크와 어떻게 만났는지도 불분명하다.

왜냐. 그녀는 제이크의 머리 속에만 있으니까.

영화 초반에 여자가 낭송하는 시가 있다. 나중에 제이크 방에서 나온다. 그 시. "개, 외로움, 도로, 아이스크림, 구름." 모두 제이크의 삶과 정확히 맞는다.

개는 아내 같은 존재를 말하고, 집에 오면 나빠지는 처지를 말하고, 아이스크림은 학교에서 본 것이고, 구름은 그가 자주 보던 것. 여자의 모든 생각과 감정은 제이크의 것이다. 그래서 그녀도 자신이 왜 우는지 모른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뭐 때문에 우는지 알 수 없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현실과 망상이 섞인다.

할아버지가 TV에서 보는 영화에 어떤 직업의 배우가 나왔는지에 따라, 망상 속 여자의 직업이 바뀐다. 화가에서 웨이트리스로. 제이크가 영화를 보고 감명받아 자신의 망상을 수정한 거다.

집 곳곳이 이상하다. 창밖은 눈이 오는데, 할아버지 있는 곳은 맑은 날씨다. 여자와 제이크가 다른 공간에 있다는 뜻이다.

슬리퍼도 같다. "내 슬리퍼가 네 슬리퍼지." 할아버지와 제이크가 같은 사람이라는 걸 계속 암시한다.

지하실에 내려가면 다 드러난다. 할아버지의 청소부 옷. 제이크가 그린 여자의 그림들. 반복되는 질문들. "풀어야 할 의문은 단 하나다."

학교 쓰레기통에 아이스크림 통이 수북이 쌓여 있다. 여자에겐 처음 보는 장소인데.

제이크가 이 장면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는 뜻이다. 매번 조금씩 바꿔가면서 다시 상상하고, 다시 경험하고.

그래서 7주 만에 만났는데 오래 알고 지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처음 가는 곳에 이상한 익숙함을 느낀다. 마치 예전에 가본 곳처럼.

제이크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만든 망상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을 다시 쓰고, 다시 상상하고, 다시 경험하면서.

그런데 여기가 이상하다. 여자도 벗어나고 싶어 한다. 자신이 상상임을 알면서도. 현실을 원한다.

제이크의 무의식도 현실을 원한다는 뜻이다. 자신이 만든 상상조차도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만두고 싶다는 뜻이다.

부모를 만나다

제이크 부모의 나이가 계속 바뀐다. 공포스럽게.

때론 젊고, 때론 늙고. 집은 제이크의 트라우마 자체다.

아마 부모 병간호를 하느라 청춘을 다 썼을 거다. 물리학자의 꿈도 사랑도 없이. 그냥 생계를 위한 청소부의 삶. 아픈 부모를 돌보는 삶.

정말 절망적이다. 그리고 그 절망 속에서 제이크는 여자를 만든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누군가. 자신을 이해하는 누군가. 혼자가 아니라는 착각을 하기 위해.

할아버지 독백이 들린다. "풀어야 할 의문은 단 하나다. 이제 대답할 시간이다."

제이크가 자신의 상상에 묻는 건 한 가지. 왜 계속 살아야 하는가. 자신의 삶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뭔가.

영화 후반에 뮤지컬 장면이 나온다. 제이크가 물리학자로 노벨상을 받는다. 늙은 아내와 부모가 옆에 있다. 아내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하지만 모든 게 상상이었다는 걸 노래한다. 망상은 절정에 간다. 그리고 끝난다.

눈으로 덮인 차. 어디서부터가 현실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거다. 제이크는 옷을 벗고 학교를 거닌다. 현실 아니면 망상,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절망적인 현실을 거부해온 제이크. 상상 속에만 살아온 제이크.

그가 선택한 방법은 뭐였을까.

영화는 말하지 않는다. 그냥 보여줄 뿐이다.


이 영화를 보고 정말 불쾌했다.

처음엔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엔 심리 스릴러라고 생각했다. 결국엔 한 남자의 삶이 끝나는 과정이었다는 걸 알았다.

속았다는 기분보다는 뭔가 착취당한 기분이 들었다. 영화는 내를 제이크의 상상 속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여자가 실제라고 믿으며 따라갔다. 공감했고, 응원했고, 바랐다.

그리고 마지막에 모든 게 거짓이었다는 걸 알았다. 그 순간 뭔가 허전했다. 기만당한 기분이 들었다.

아, 이 영화는 그런 감정을 주려고 만든 거구나. 우리가 제이크의 망상에 빠져들길 원했고, 마지막에 깨어나길 원했고, 그 과정 속에서 불편해지길 원했다.


이 영화를 다시 볼까 생각을 안 한다.

한 번 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뭔가 마음에 남는 영화는 아니지만, 떠나지 않는 영화다.

그 여자가 실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후로, 영화가 주는 불편함이 계속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제이크는 왜?"라는 질문을 계속 했는데, 결국 영화는 "그래서 그렇게 했다"고만 보여준다.

답을 주지 않는다. 설명도 하지 않는다. 그냥 상황을 제시한다.

어쩌면 이 영화는 답을 주지 않으려고 만들어진 거 같다. 우리가 계속 불편해하길 원하는 거 같다. 계속 "왜?"라고 물으면서.

그게 이 영화의 힘이다. 불편함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고, 그 불편함을 해결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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