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디스패치
2021년 웨스 앤더슨 감독 작품이다. 칸 영화제에서 공개됐고,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근데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다.
가상의 프랑스 도시 앙뉘. 미국 신문사 '프렌치 디스패치'의 마지막 호를 만드는 이야기다. 편집장(빌 머레이)이 죽었다. 유언에 따라 마지막 호를 발행하고 문을 닫는다.
영화는 네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옴니버스 형식이다.
첫 번째, 자전거 여행 기사. 앙뉘 시내를 소개한다. 짧다. 인트로 같은 느낌.
두 번째, 감옥에 갇힌 천재 화가 이야기. 모세스 로젠탈러(베니치오 델 토로)는 살인범이다. 근데 그림을 그린다. 천재적으로. 교도관 시몬(레아 세두)이 모델이다. 둘이 사랑에 빠진다. 미술상 줄리앙(애드리언 브로디)이 발견한다. 전시회를 연다. 로젠탈러가 유명해진다.
세 번째, 학생 운동 이야기. 1968년 학생 혁명. 제프리스키(티모시 샬라메)가 리더다. 체스 천재이기도 하다. 기자 루신다(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취재한다. 학생들과 함께 지낸다. 바리케이드 치고, 구호 외치고. 근데 루신다는 관찰자다. 참여하지 않는다.
네 번째, 납치 사건. 경찰서장 아들이 납치됐다. 요리사 네스카피에(스티븐 박)가 구출한다. 기자 로버크(제프리 라이트)가 이야기를 쓴다. TV 토크쇼에 나와서 얘기한다.
웨스 앤더슨의 극한
이 영화는 웨스 앤더슨 스타일의 정점이다. 아니, 극한이다.
대칭 구도. 파스텔 톤. 미니어처 같은 세트. 빠른 카메라 무빙. 내레이션. 챕터 구분. 웨스 앤더슨 영화 특징이 다 들어있다. 과할 정도로.
화면이 그림 같다. 정말로. 한 프레임 한 프레임이 미술 작품이다. 색감, 구도, 소품 배치. 완벽하다.
흑백과 컬러를 오간다. 과거는 흑백, 현재는 컬러. 아니면 그 반대. 규칙은 있는데 복잡하다. 화면비도 바뀐다. 1.37:1, 2.39:1. 장면마다 다르다. 이유가 있다. 감정에 따라, 시점에 따라.
배우들이 엄청 많다. 티모시 샬라메, 레아 세두, 베니치오 델 토로, 애드리언 브로디, 틸다 스윈튼, 프랜시스 맥도먼드, 제프리 라이트, 빌 머레이, 오웬 윌슨, 끝이 없다.
다들 조연이다. 길어야 10분 나온다. 짧으면 1분. 근데 다들 진지하게 연기한다.
로젠탈러 이야기가 제일 인상적이었다. 베니치오 델 토로가 거친 화가를 잘 표현했다. 감옥에 갇혔지만 그림으로 자유롭다.
레아 세두와의 관계도 아름답다. 말이 없어도 통한다. 그림으로 대화한다. 애드리언 브로디의 미술상도 재밌다. 예술을 상품으로 만드는 사람. 진심인지 장사꾼인지 애매하다.
학생 운동 이야기는 복잡했다. 티모시 샬라메가 멋있긴 한데, 캐릭터가 얇다. 혁명가인지 철부지인지.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기자가 흥미롭다. 관찰자의 윤리. 참여해야 하나, 거리를 둬야 하나. 고민한다. 근데 답은 안 나온다.
납치 사건 이야기는 제일 약했다. 복잡하기만 하다. 제프리 라이트 내레이션이 너무 길다.
아름답지만 먼
문제는 여기 있다.
너무 예쁘다. 너무 완벽하다. 그래서 감정이 안 들어온다.
인물들이 인형 같다. 세트 안에서 움직이는 피규어. 살아있는 사람 같지 않다. 이야기도 그렇다. 네 개 에피소드 다 흥미롭다. 근데 몰입이 안 된다. 거리감이 느껴진다.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관찰하게 된다. 미술관에서 그림 보듯이. 아름답지만 멀다.
대사가 빠르다. 엄청나게. 특히 내레이션. 정보가 쏟아진다. 따라가기 힘들다. 한 번 놓치면 맥락을 잃는다. 자막 읽느라 정신없다. 화면 볼 여유가 없다. 아이러니하다. 이렇게 예쁜 화면인데.
이 영화의 진짜 주제는 저널리즘이다. 아니, 신문이다.
웨스 앤더슨은 신문을 사랑한다. 종이 신문. 활자. 편집. 기자들. 영화 내내 신문이 나온다. 페이지가 넘어간다. 기사 제목이 보인다. 사진이 삽입된다. 영화 자체가 신문 같다. 섹션으로 나뉘어있다. 각 에피소드가 기사다.
편집장이 말한다. "울지 마라. 울음은 없다." 기자는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고.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근데 기자들은 다 감정적이다. 대상을 사랑한다. 로젠탈러를, 학생들을, 요리를. 객관은 불가능하다.
영화는 이 모순을 보여준다. 저널리즘의 이상과 현실.
마지막 장면. 편집실. 기자들이 모여서 기사를 읽는다. 편집장 추도식처럼. 각자 자기 기사를 낭독한다. 목소리가 떨린다. 울먹인다. "울지 마"라는 규칙을 어긴다.
이 장면이 좋았다. 처음으로 인물들이 살아있게 느껴졌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취향을 탄다. 극단적으로.
웨스 앤더슨 팬이면 최고의 영화다. 그의 모든 장점이 집약됐다. 미학, 유머, 디테일. 근데 안 맞는 사람한테는 힘들다. 2시간 동안 예쁜 화면만 본다. 이야기는 머리에 안 들어온다.
배우들은 다 인상적이었다. 특히 베니치오 델 토로, 레아 세두, 제프리 라이트. 짧은 시간에 강렬함을 남겼다.
촬영, 미술, 의상 모두 완벽했다.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다. 당연하다. 음악도 좋았다.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작곡. 웨스 앤더슨 단골 작곡가다. 경쾌하고, 서정적이고.
근데 이 모든 게 합쳐져도... 차가웠다.
어떤 영화는 머리로 본다. 어떤 영화는 가슴으로 본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눈으로 보는 영화다. 아름답다. 감탄할 만하다. 근데 가슴은 안 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나 <문라이즈 킹덤>과 비교하게 됐다. 그쪽은 스타일 속에 따뜻함이 있었다. 인물이 살아있었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스타일이 내용을 압도한다. 형식이 이야기를 삼킨다.
예술 영화다. 순수하게. 상업성은 없다. 대중 영화도 아니다. 웨스 앤더슨이 하고 싶은 걸 한 거다. 존중한다. 근데 공감은 못 했다.
웨스 앤더슨의 정점이자 한계를 보여주는 영화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다. 근데 더 완벽해져야 할 필요도 없다.
시간이 지나면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다. 처음엔 이해 못 했던 게 나중에 와닿을 수도.
그런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