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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옥자〉 리뷰 – 거대 동물과 소녀의 모험

by lazypenguinclub 2025.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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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

2017년 넷플릭스 영화다. 봉준호 감독 작품이고, 안서현, 틸다 스윈튼, 제이크 질렌할이 나온다.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랐는데 논란이 많았다. 넷플릭스 영화라서. 극장 개봉 안 하는 영화가 칸에? 프랑스 영화인들이 반발했다. 상영 시작할 때 야유도 나왔다.

근데 영화가 시작되니까 조용해졌다. 보고 나서 박수 쳤다.

강원도 산골. 미자(안서현)가 할아버지(변희봉)랑 산다. 옥자도 함께. 옥자는 슈퍼 돼지다. 엄청 크다. 코끼리만 하다.

미자와 옥자는 친구다. 10년을 함께 자랐다. 숲에서 뛰놀고, 물에서 수영하고, 같이 잔다.

이 초반 장면들이 아름답다. 강원도 숲, 계곡, 햇살. 동화 같다. 미자와 옥자가 함께 있는 모습이 평화롭다.

근데 옥자는 미란도 그룹 거다. 글로벌 기업. CEO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가 슈퍼 돼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친환경 육류 혁명!" 전 세계 농가에 슈퍼 돼지를 보냈다. 10년 후 제일 잘 자란 돼지를 뉴욕으로 데려온다는 계획.

옥자가 선택됐다. 제일 크고, 제일 건강하다고.

미자가 모른다. 옥자를 빼앗긴다. 트럭에 실려간다. 미자가 쫓아간다. 맨발로. 산을 내려가고, 도로로 뛰어들고.

고속도로 장면이 긴박하다. 트럭이 달린다. 미자가 뛴다. 따라잡는다. 옥자가 미자를 본다. 울부짖는다.

동물해방전선(ALF) 사람들이 나타난다. 제이(폴 다노)가 리더다. 트럭을 가로막는다. 옥자를 구하려고. 액션 신이 펼쳐진다. 트럭이 뒤집히고, 옥자가 탈출하고. 근데 결국 붙잡힌다. 너무 크다. 숨을 곳이 없다.

ALF 사람들이 미자한테 말한다. "같이 가자. 미란도 그룹의 진실을 밝혀야 해." 카메라를 준다. 몰래 촬영하라고. 미자는 이해 못 한다. 영어도 모른다. 그냥 옥자 찾고 싶을 뿐이다.

뉴욕으로 간다. 미란도 본사. 화려하다. 언론이 몰려있다. "슈퍼 돼지 옥자 도착!" 축제 분위기.

윌리엄 박사(제이크 질렌할)가 나온다. TV 스타 동물학자. 과장되게 말한다. "와우! 환상적인 옥자!"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다. 제이크 질렌할 연기가 독특하다. 과하다. 일부러 과하게. 가식적인 TV 인물을 풍자한다.

미자가 미란도 본사에 잠입한다. ALF 도움으로. 지하로 내려간다.

여기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 동화가 끝난다. 악몽이 시작된다.

실험실이 있다. 슈퍼 돼지들이 갇혀있다. 비좁은 우리에. 학대당한다. 주사 맞고, 해부되고. 도축장도 본다. 컨베이어 벨트. 돼지들이 줄지어 들어간다. 비명. 피.

이 장면들이 불편하다. 진짜 불편하다. 봉준호가 미화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미자가 옥자를 찾는다. 옥자도 여기 있다. 도축 대기 중. 미자가 달려간다. 안는다. 울면서. 옥자가 임신했다. 새끼를 낳았다. 작은 슈퍼 돼지. 근데 빼앗긴다. 옥자가 울부짖는다.

이 장면에서 울었다. 옥자는 동물이지만 엄마다. 감정이 있다. 고통받는다.

옥자는 CG다. 전부. 근데 진짜 같다. 표정이 산다. 눈빛, 코 움직임, 귀. 다 표현된다. 미자를 볼 때 행복해하고, 위험할 때 두려워한다. 움직임도 자연스럽다. 뛰고, 구르고, 헤엄친다. 무게감이 느껴진다. 진짜 거대한 동물이 있는 것처럼.

안서현이 없는 걸 보고 연기했을 텐데,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옥자를 만지고, 안고, 함께 있다. 진짜 친구 같다. 봉준호가 <괴물>에서도 CG 생물을 잘 만들었는데, 옥자는 더 발전했다. 감정이 있는 존재로 느껴진다.

자본의 위선과 작은 승리

미란도 그룹이 악당이다. 근데 전형적인 악당은 아니다.

루시 미란도가 말한다. "우리는 친환경이에요! 지속 가능해요! 동물 복지를 생각해요!" TV에서 웃으면서. 거짓말이다. 뒤에서는 학대하고 도축한다. 이윤만 생각한다.

틸다 스윈튼이 1인 2역을 한다. 루시와 낸시. 쌍둥이 자매. 루시는 겉으로 착한 척, 낸시는 냉혹하다. 둘 다 똑같다. 탐욕스럽다. 차이는 연기를 하느냐 안 하느냐뿐.

봉준호가 기업을 풍자한다. "친환경" "윤리적" 같은 마케팅 용어. 다 허울이다. 돈이 목적이다.

ALF도 완벽하지 않다. 이상주의자들이다. 동물을 구하고 싶어한다. 근데 방법이 서툴다. 실수도 한다. 순진하다. 제이가 미자한테 번역기를 안 켜준다. 자기들끼리 결정한다. 미자 의견은 안 묻는다. 선의지만 오만하다.

영화는 이것도 비판한다. 운동권의 독선. 당사자 목소리를 무시하는 거. 결국 미자만 진짜다. 옥자를 사랑하니까. 계산 없이. 순수하게.

미자가 옥자를 구한다. 어떻게? 돈으로. 할아버지가 금돼지를 판다. 평생 모은 재산. 미란도한테 옥자를 산다.

슬픈 해결책이다. 자본주의 안에서의 해결. 시스템은 안 바뀐다. 그냥 한 마리만 구한 거다.

미자와 옥자가 집으로 돌아간다. 강원도 숲. 다시 평화롭다. 근데 옥자 옆에 새끼가 있다. 미자가 구해온 거다. 작은 슈퍼 돼지.

희망이다. 작지만.

영화는 말한다. 세상을 바꿀 순 없다. 기업은 여전히 돌아간다. 도축장도 계속된다. 근데 한 생명은 구할 수 있다. 작은 연대. 작은 선택. 그게 의미 있다고.

봉준호의 방식

<옥자>는 여러 장르가 섞였다. 동화 같은 초반 숲 장면들, 모험 같은 미자의 여정, 코미디 같은 제이크 질렌할 장면들, 스릴러 같은 고속도로 액션, 공포 같은 도축장 장면.

이게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어색하지 않다. 봉준호 특기다.

<괴물>도 그랬다. 가족 드라마, 괴수 영화, 코미디, 사회 비판. 다 섞었다. <설국열차>도 마찬가지. 액션, SF, 계급 우화. <기생충>은 블랙 코미디, 스릴러, 사회 드라마.

봉준호는 장르를 도구로 쓴다. 메시지 전달하는 수단으로. 재밌게 만들면서도 할 말은 한다. <옥자>도 그렇다. 귀여운 돼지 이야기 같지만, 자본주의 비판이다. 동화 같지만, 현실을 고발한다.

넷플릭스 영화라서 극장에서 못 본 사람도 많다. 아쉽다. 큰 화면으로 봤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근데 넷플릭스 덕분에 전 세계 사람들이 동시에 볼 수 있었다. 그것도 의미 있다.

칸 영화제 논란도 재밌었다. 전통 vs 새로운 방식. 극장 vs 스트리밍. 결국 좋은 영화면 상관없다는 게 증명됐다.

<옥자>는 완벽한 영화는 아니다. 중반부가 좀 느리고, 메시지가 과할 때도 있다. 근데 기억에 남는다. 옥자의 얼굴, 미자의 눈물, 도축장의 비명.

그리고 질문을 남긴다. 우리가 먹는 고기는 어디서 오는가? 기업의 말을 믿어도 되는가? 작은 선택이 의미 있는가?

답은 각자 찾아야 한다.

영화 보고 나서 한동안 고기를 못 먹었다. 옥자가 자꾸 생각났다. 지금은 다시 너무 잘 먹지만 가끔 생각한다. 이 고기도 옥자 같은 동물이었겠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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