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만드는 공동 환상
〈릴리슈슈의 모든 것〉을 봤다. 이사토시 이시하라 감독이 2001년에 만든 영화다.
20년이 넘은 영화인데, 현재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인터넷 문화가 이제 막 생겨나던 시절. 블로그도 없고, SNS도 없던 때. 오직 2채널이나 익명 커뮤니티만 존재하던 시대.
그 시대의 인터넷을 이 영화는 담는다.
릴리슈슈는 실존하지 않는 음악가다.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의 사람들은 그녀를 숭배한다.
팬들은 그녀의 음악을 놓고 토론한다. 음악의 의미를 분석하고, 철학적으로 해석한다.
릴리슈슈는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채워준다. 고통 속에서,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 속에서.
그 팬들 중에는 유키(고토쿠 슈세이)라는 14살 소년이 있다.
유키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다. 가정에서도 돌봄을 받지 못한다. 인터넷만이 그의 피난처다.
인터넷은 릴리슈슈 팬들에게 낙원이다.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추상적인 예술을 논할 수 있는 공간. 누구나 평등하고, 현실의 신분이나 나이는 상관없다.
하지만 그 낙원은 곧 지옥으로 변한다.
팬덤 내에서 위계질서가 생긴다. 누가 더 깊게 이해하는지, 누가 진정한 팬인지를 놓고 싸운다.
익명이라는 보호 아래 사람들은 더 잔인해진다. 유키와 같은 약자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현실과 인터넷이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인터넷도 결국 인간의 욕망으로 만들어진 공간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가장 끔찍한 부분은 온라인 괴롭힘이다.
커뮤니티의 사람들이 유키에게 집단으로 모욕을 퍼붓는다. 그들은 릴리슈슈의 진정한 팬이 아니라고 말한다.
유키는 자신의 개인정보를 공개당한다. 현실에서도 괴롭힘이 시작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무너진다. 인터넷 속의 익명적 폭력이 현실의 물리적 폭력으로 변한다.
20년 전 영화가 오늘날의 사이버 폭력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유키라는 소년
고토쿠 슈세이의 연기는 정말 뛰어나다.
유키는 말이 많지 않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깊은 슬픔과 고독이 있다.
학교에서는 완전히 투명한 존재. 인터넷에서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마저도 빼앗긴다. 팬덤 내에서 그는 이단자가 되고, 결국 제거 대상이 된다.
유키는 인터넷을 통해 구원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인터넷도 같은 논리로 작동한다.
강자가 약자를 짓밟고, 다수가 소수를 배척한다.
이사토시 이시하라 감독의 촬영 방식이 독특하다.
화면 위에 검은 줄무늬가 그려진다. 마치 필름 스트립을 보는 듯한 효과.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보는 세상. 데이터로 축약된 인물들.
현실의 디지털화를 영상으로 표현한다.
또한 감독은 실제 2채널과 같은 커뮤니티의 글들을 인용한다. 영화와 현실이 섞인다.
영화 속에서 릴리슈슈는 나타나지 않는다.
팬들은 그녀의 음악만 듣고, 그녀의 이야기만 한다. 하지만 그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존재한다. 팬들의 상상 속에만.
각자가 원하는 모습으로 해석되고, 각자의 욕망을 담는 그릇이 되어 있다.
릴리슈슈는 인터넷이 만들어낸 공동의 환상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점은 사회적 배제의 구조다.
유키는 학교에서도 버림받고, 가정에서도 버림받는다. 인터넷만 남아 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도 배제된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그래서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
현재의 시점에서
2001년 영화가 오늘날 SNS 시대를 완벽하게 설명한다.
인터넷 커뮤니티가 SNS로 바뀌었을 뿐. 기본 구조는 동일하다.
누군가의 추상적인 상(이미지)을 숭배한다. 그 추상적 상이 현실의 정치, 경제, 사회 문제와 얽힌다.
개인의 복잡한 감정과 생각이 단순화되고 단순화된 감정들이 모여 폭력이 된다.
여전히 유키 같은 소년들과 소녀들이 온라인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그들도 인터넷에만 기댈 수 있는 아이들이다.
영화의 끝은 자극적이고 비극적이다.
극단적인 결말이 나온다. 유키가 어떤 행동을 하게 된다.
이 결말이 영화의 메시지를 강하게 만든다.
온라인 폭력의 결과가 오프라인 폭력으로 나타난다. 가상의 욕망과 혐오가 현실의 참극으로 변한다.
영화는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말한다.
〈릴리슈슈의 모든 것〉은 인터넷 문화에 대한 가장 정확한 기록이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제시한다.
인터넷은 연결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배제의 공간이다. 자유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폭력이 생성되는 공간이다.
인터넷이 현실을 대체하지 않는다는 걸 이 영화는 보여준다. 대신 인터넷과 현실이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
가상의 욕망이 현실의 폭력이 되고. 현실의 고통이 온라인에서 표출된다.
영화는 유키라는 한 소년을 통해 이 모든 것을 표현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건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이다.
우리 중 누구나 유키가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우리 중 누구나 유키를 괴롭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익명이라는 보호 아래에서 평범한 사람들도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것이 온라인 폭력의 가장 무서운 점이다. 특정한 악인이 있는 게 아니라, 누구나 그 악인이 될 수 있다는 것.
현재 우리는 SNS 시대를 살고 있다.
개인이 공개적인 인물이 되고, 모든 소통이 기록된다. 익명성도 사라져가고 있다.
하지만 폭력의 구조는 동일하다.
누군가에 대한 집단적 혐오, 캔슬 컬처, 디지털 린치. 모두 〈릴리슈슈의 모든 것〉이 예측했던 것들이다.
이 영화의 가치는 여기에 있다. 기술이 발전했을 뿐,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온라인 문화의 어두운 측면을 정면으로 바라보도록 강요한다.
편안하지 않은 영화지만, 정확한 영화다. 필요한 영화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