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Mickey 17》 리뷰와 봉준호 감독의 시선 탐구

by lazypenguinclub 2025. 8. 28.

서론 – 또 한 번의 도전

《Mickey 17》은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 이후 처음으로 선보인 장편 영화입니다. 한국이 아닌 헐리우드를 무대로, 원작 소설 에드워드 애슈턴의 을 토대로 재창조했습니다. 단순히 원작의 줄거리를 옮겨 놓는 것이 아니라, 봉준호만의 색깔을 입혀 ‘복제와 존재의 의미’라는 보편적 질문을 담아냈습니다. 영화는 SF 장르 안에 블랙 코미디와 풍자를 녹여내며, 그의 전작들이 지니던 사회적 메시지를 또 한 번 변주합니다.

봉준호의 시선 – 사회의 구조와 인간의 본성

봉준호 영화의 특징은 장르를 빌려 사회와 인간을 들여다보는 데 있습니다. <괴물>이 가족극으로 포장된 환경 재난 이야기였고, <설국열차>가 디스토피아 속 계급의 은유였다면, 은 복제 인간을 통해 노동과 착취, 정체성과 권력의 문제를 드러냅니다. 주인공 미키는 죽어도 다시 복제되어 투입되는 ‘소모품’입니다. 그의 존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얼마나 도구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은유입니다.

이중적 존재 – 블랙 유머와 비극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한 미키 17과 미키 18은 같은 기억을 지녔지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봉준호는 이 설정을 통해 자아가 얼마나 쉽게 분열될 수 있는지를 드러내면서도, 특유의 블랙 유머로 풀어냅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웃음을 끌어내는 이 연출 방식은 <살인의 추억>에서 보여준 아이러니한 웃음, <기생충>에서의 풍자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웃음과 공포, 코미디와 비극을 함께 다루며 관객을 양가적 감정 속에 빠뜨립니다.

세계관 확장 – 한국에서 헐리우드로

《Mickey 17》은 봉준호의 첫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그는 이미 <설국열차>와 <옥자>에서 영어권 제작 경험을 쌓았지만, 이번 작품은 <기생충> 이후 기대와 부담이 동시에 얹힌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익숙한 방식대로 ‘장르의 틀을 빌려 사회를 비추는 거울’을 만들었습니다. 우주 탐사선이라는 배경은 낯설지만, 안에 담긴 질문은 여전히 봉준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소모하고 있는가?”

결론 – 봉준호의 일관성과 새로움

《Mickey 17》은 거대한 스펙터클 속에서도 감독 고유의 주제의식이 살아 있습니다. 복제와 소모, 노동과 권력, 인간성과 희망이라는 주제는 전작들의 맥락을 잇습니다. 동시에 새로운 배우들과 헐리우드 시스템을 통해 확장된 스케일은 그의 영화 세계를 한층 넓혔습니다. 봉준호는 다시 한 번, 장르를 빌려 우리 사회와 인간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선을 증명했습니다.

시청 포인트 3가지

  1. 봉준호적 풍자 – SF 속에 담긴 사회적 은유와 블랙 코미디는 그의 전작들과 맥을 같이 합니다.
  2. 로버트 패틴슨의 이중 연기 – 동일한 기억을 가진 두 존재를 다른 뉘앙스로 표현해내며, 정체성의 문제를 극대화합니다.
  3. 확장된 스케일 – 우주와 복제라는 거대한 배경을 통해, 봉준호가 한국을 넘어 글로벌 무대에서도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줍니다.

봉준호 감독의 전작과의 연결성

봉준호의 영화는 언제나 장르적 외피를 통해 사회를 비추는 거울을 세웁니다. 〈살인의 추억〉에서 미제 사건의 안개는 개인의 집착과 사회 시스템의 무력함을 함께 드러냈고, 〈괴물〉의 괴수는 국가와 권력이 가족을 보호하지 못하는 현실을 풍자했습니다. 〈설국열차〉는 한 대의 기차를 계급 질서의 축소판으로 바꾸었고, 〈옥자〉는 생명까지도 상품화되는 자본의 탐욕을 들춰냈습니다. 〈기생충〉은 한 채의 집을 무대로 계급의 층위를 시각화하며, 상층과 하층의 시선이 어떻게 서로를 오해하고 소모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Mickey 17〉은 이 연속선 위에서 무대를 우주로 넓힙니다. 미키는 죽을 때마다 기억이 복제되어 다시 투입되는 ‘소모품’입니다. 교체 가능성과 대체 가능성으로 환원되는 인간의 삶은, 노동과 생존이 어떻게 시스템에 의해 재편되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설국열차〉에서 한 칸에 갇힌 인간들이 노동력으로만 존재했던 장면, 〈옥자〉에서 생명을 효율로 계산하던 장면이 여기서는 복제 기술과 식민적 개척의 논리로 변주됩니다. 공간과 장치가 달라졌을 뿐, 인간을 도구화하는 구조는 여전합니다.

 

봉준호 특유의 블랙 유머도 이어집니다. 참혹한 조건 속에서 튀어나오는 아이러니는 웃음을 통해 세계의 부조리를 또렷하게 보이게 합니다. 〈살인의 추억〉과 〈기생충〉에서 그랬듯, 웃음은 회피가 아니라 직시의 수단입니다. 〈Mickey 17〉에서 서로 다른 결을 지닌 미키들의 어긋남은 우스꽝스럽게 보이지만, 그 어긋남이야말로 동일성의 환상과 정체성의 균열을 드러내는 장치입니다.

 

또 하나의 축은 권력과 통치의 방식입니다. 새로운 세계를 개척한다는 서사는 언제나 지배의 언어를 동반합니다. 명령 체계와 효율의 논리가 윤리와 생명의 경계를 밀어붙일 때, 봉준호는 항상 그 틈에서 인간적 연대의 가능성을 탐색합니다. 〈설국열차〉의 반란, 〈기생충〉의 사다리 게임, 그리고 〈Mickey 17〉의 복제-개체들의 협력은 서로 다른 형태의 저항이면서, 동시에 생존을 위한 연대의 실험입니다.

 

결국 〈Mickey 17〉은 확장된 시공간 속에서도 봉준호의 질문을 되묻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대가로 체제를 유지하며, 그 체제는 인간을 어디까지 소모할 수 있는가.” 감독은 장소를 바꾸되 주제의 축을 바꾸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의 영화 세계는 더 멀리 뻗어가면서도, 한 사람의 얼굴과 한 공동체의 윤리를 놓치지 않습니다. 우주의 침묵 속에서도, 그의 카메라는 인간의 목소리를 끝내 포기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