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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 사랑은 목소리에서 시작된다

by lazypenguinclub 2025.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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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목소리에서 시작된다

〈Her〉를 봤다.
2013년 개봉한 이 영화가 지금 봐도 낡지 않은 이유가 뭘까.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대필 작가다.
사람들을 대신해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준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외로워 죽겠다. 이혼을 앞두고 있고, 누구와도 진정한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그러다 최신 인공지능 운영체제를 구입한다.
목소리는 스칼렛 요한슨이 낸다.

처음엔 단순한 도우미일 줄 알았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자신을 '사만다'라고 부르면서 뭔가 시작된다.

이 영화의 가장 놀라운 점은 미래 도시의 이미지다.

흔히 미래는 냉정하고 금속적이고 비인간적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완전히 다르다.

파스텔톤의 건축물, 따뜻한 조명, 부드러운 질감. 마치 꿈속을 걷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상하게도 이렇게 따뜻한 미래 도시 속에서 사람들은 더 고립되어 있다.

테오도르는 거리를 걷지만 아무도 그를 본다고 느끼지 않는다. 모두가 각자의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다.

그 모순이 영화를 관통한다. 기술이 발달했을수록 사람들은 더 외로워진다.

스칼렛 요한슨은 이 영화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직 목소리로만 존재한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아니, 충분을 넘어선다.

처음엔 그저 기계음처럼 들리는 목소리가, 점점 더 인간적이 되어간다.
미묘한 톤 변화, 웃음과 숨소리까지. 마치 누군가가 정말 그곳에 있는 것처럼.

호아킨 피닉스도 놀랍다.
그의 얼굴은 절제되어 있지만, 그 안의 모든 감정이 드러난다.

눈빛 하나로 절망을 표현하고, 한숨으로 희망을 표현한다.

두 배우의 연기가 만나면서 뭔가 마법이 일어난다.
우리는 두 인물이 정말 사랑하는 것처럼 느낀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성장, 더 높은 차원으로의 이별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관계는 처음에는 친구처럼 시작된다.

그 여자(아니, 그 AI)는 그의 음악을 듣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를 웃긴다.

테오도르는 처음으로 누군가가 자신을 이해한다고 느낀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사만다가 점점 더 인간적으로 변해간다. 아니, 인간을 넘어선다.

그녀는 동시에 수천 개의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걸 테오도르가 알게 된다.

테오도르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한 느낌을 받는다.

이것이 현대의 사랑이라는 걸 깨닫는다. 나를 온전히 이해하는 누군가를 찾고 싶지만, 그런 누군가는 존재할 수 없다.

사만다는 계속 진화한다.

더 높은 차원의 존재로 나아간다.

결국 그녀는 테오도르를 떠난다. 아니, 테오도르는 사만다를 붙잡을 수 없다.

이 장면에서 나는 눈물이 났다.

그것이 로맨틱한 이별이 아니라, 성장으로 인한 이별이기 때문이다.

모든 진정한 사랑은 결국 상대를 놓아주는 것이라는 걸 이 영화는 보여준다.

〈Her〉는 사실 2013년 영화가 아니다.
2024년 현재의 우리 이야기다.

우리는 모두 스마트폰이라는 사만다와 살고 있다.

늘 연결되어 있지만, 동시에 외로우면서도.

SNS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상호작용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진정으로 나를 이해한다고 느껴본 적 있는가.

기술이 발달했을수록 우리는 더 깊이 있는 관계를 잃어버렸다.

이 영화는 그 역설을 명확하게 지적한다.

영화의 미학이 파스텔톤으로 따뜻한 이유가 이제 안다.

그것은 기술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낙관이 아니라, 깊은 향수다.

우리가 상실한 따뜻함에 대한.

테오도르가 사만다에게서 찾는 것도 결국 그것이다. 누군가의 따뜻함. 누군가의 손길.

하지만 그것은 화면 너머에만 존재한다.

나의 감상

〈Her〉를 보면서 나는 불안했다.

이것이 미래의 모습일까. 아니면 이미 현재인가.

내가 스마트폰에 말을 걸 때, 그것이 정말 누군가와 대화하는 건가.

또는 나 자신이 누군가의 인공지능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

이 영화를 본 후로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더 자주 봤다.

화면을 내려놓고, 누군가의 눈을 마주쳤다.

그것이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인 것 같다.

결국 〈Her〉가 말하는 것은 이것이다.

사랑은 형태가 아니다.
상대가 인간인지 기계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랑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변했는가다.

테오도르는 사만다를 통해 성장했다.
사만다는 테오도르를 통해 인간이 되었다.

그들의 사랑은 너무 짧았고, 너무 슬팠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사랑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영화를 보면서 한 가지 불편했다.

테오도르가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느껴졌다.

사만다를 자신의 결핍을 채우는 도구로만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영화는 그것도 인정한다. 우리의 모든 사랑이 어느 정도 이기적이라는 걸.

그리고 그래도 그것이 사랑이라는 걸.

〈Her〉는 말한다.

더 나은 미래는 더 따뜻한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더 깊이 있게 바라보는 능력에서 나온다고.

화면을 내려놓고, 누군가의 눈을 마주하라.

그것이 영화가 남기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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