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의 미로
2006년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작품이다. 이바나 바쿠에로, 세르지 로페즈, 마리벨 베르두가 나온다.
다크 판타지다. 동화 같은데 잔혹하다. 아름다운데 무섭다.
1944년 스페인. 프랑코 독재 정권 시기. 내전이 끝났지만 여전히 피가 흐른다.
오필리아(이바나 바쿠에로)는 어린 소녀다. 엄마가 재혼했다. 새 아버지 비달 대위(세르지 로페즈)를 만나러 간다. 시골 군사 기지로.
비달은 괴물이다. 인간인데 괴물이다. 파시스트 장교다. 반군을 고문한다. 죽인다. 잔혹하게.
오필리아가 두렵다. 비달이. 이 세상이.
폐허 같은 미로를 발견한다. 돌로 만들어진. 오래됐다.
들어간다. 그곳에서 만난다. 판(더그 존스)을.
반인반수다. 염소 같은 뿔, 나무 같은 몸. 기괴하다. 근데... 매혹적이다.
판이 말한다. "너는 공주야. 지하 왕국의. 잃어버린 공주."
"세 가지 시험을 통과해. 그러면 돌아갈 수 있어. 왕국으로."
오필리아가 믿는다. 믿고 싶다. 현실이 너무 끔찍하니까.
첫 번째 시험. 거대한 나무 속으로 들어간다. 두꺼비가 있다. 배 속에서 열쇠를 꺼내야 한다.
오필리아가 한다. 드레스가 더러워진다. 근데 성공한다.
두 번째 시험. 페일맨(더그 존스)의 방에 간다.
페일맨은 끔찍하다. 눈이 없다. 손바닥에 눈이 있다. 식탁에 앉아있다. 음식이 가득하다.
"아무것도 먹지 마." 판이 경고했다.
오필리아가 들어간다. 단검을 가져와야 한다. 조심스럽게.
근데 포도를 먹는다. 배고파서. 실수다.
페일맨이 깨어난다. 손바닥에 눈을 박는다. 본다. 쫓아온다.
오필리아가 도망친다. 간신히 탈출한다. 요정 두 마리가 죽는다.
세 번째 시험. 판이 요구한다. "동생의 피를 몇 방울만."
오필리아가 거절한다. "안 돼. 동생은 안 돼."
판이 화낸다. 배신이라고.
현실의 잔혹함
환상만 있는 게 아니다. 현실이 더 잔혹하다.
비달이 사람들을 죽인다. 농부 부자를 죽인다. 반군이라고. 증거도 없이.
병에 얼굴을 내려친다. 반군을 심문한다. 고문한다.
메르세데스(마리벨 베르두)는 가정부다. 비밀리에 반군을 돕는다. 음식, 약품을 빼돌린다.
오필리아의 엄마가 죽는다. 출산 중에. 동생은 산다.
오필리아가 혼자가 된다. 엄마도 없고, 새 아버지는 괴물이고.
비달이 메르세데스를 잡는다. 배신자라고. 죽이려고 한다.
메르세데스가 칼을 꺼낸다. 비달을 찌른다. 입을. 도망친다.
비달이 쫓는다. 입이 찢어진 채로. 괴물 같다. 진짜 괴물.
오필리아가 동생을 안고 도망친다. 미로로.
비달이 따라온다.
미로 안. 판이 나타난다. 마지막 기회를 준다.
"동생의 피를 줘. 문을 열어야 해."
오필리아가 거절한다. "안 돼. 순수한 피는 흘릴 수 없어."
비달이 총을 쏜다. 오필리아를.
오필리아가 쓰러진다. 피를 흘린다. 동생을 꼭 안은 채.
현실에서는 죽는다. 오필리아가. 어린 소녀가 죽는다.
메르세데스가 와서 안는다. 운다.
비달도 죽는다. 반군한테. 총 맞는다.
끝이다. 비극적으로.
근데 환상에서는 다르다.
오필리아가 눈을 뜬다. 지하 왕국에. 황금빛 궁전.
왕과 여왕이 있다. 부모님이다.
판이 말한다. "마지막 시험을 통과했어. 자기 피를 흘렸어. 순수함을 증명했어."
"이제 공주야. 영원히."
오필리아가 웃는다. 행복하다.
영화가 끝난다.
어느 게 진짜일까? 환상? 현실?
델 토로는 답을 안 준다. 관객이 선택한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세계
델 토로는 괴물을 사랑한다. 근데 그의 괴물은 무섭지 않다. 아니, 무서운데... 인간적이다.
판은 기괴하다. 근데 오필리아를 돕는다. 진심으로.
페일맨은 끔찍하다. 근데 자기 영역만 지킨다. 침범하지 않으면 안전하다.
진짜 괴물은 인간이다. 비달이. 파시즘이.
델 토로가 계속 말하는 거다.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도, <크림슨 피크>에서도.
괴물보다 인간이 더 무섭다고.
<판의 미로>는 시각적으로 완벽하다.
색감이 두 가지다. 현실은 차갑다. 파랑, 회색. 환상은 따뜻하다. 금색, 붉은색.
미술이 환상적이다. 아카데미 미술상 받았다. 당연하다.
페일맨 디자인이 악몽이다. 근데 아름답다. 기괴한 아름다움.
판의 모습도 그렇다. 나무와 돌이 섞인 듯한. 살아있는 조각상.
더그 존스가 연기했다. 분장 속에서. 몸짓만으로. 대단하다.
촬영도 좋다. 기예르모 나바로. 아카데미 촬영상 받았다. 어둠 속에서도 디테일이 보인다.
분장도 최고다. 아카데미 분장상. 괴물들이 진짜처럼 보인다.
이바나 바쿠에로가 오필리아를 완벽하게 연기했다. 당시 11살이었다. 순수하면서도 강하다. 두려워하지만 용감하다.
세르지 로페즈의 비달은 정말 무섭다. 표정 없이 사람을 죽인다. 냉혹하다. 인간성이 없다.
마리벨 베르두도 좋았다. 메르세데스가 겉으론 순종적인데, 속으론 저항한다. 강한 여성.
칸 영화제가 아니라 베니스 영화제였다. 22분 기립 박수 받았다.
평단 평가 최고였다. 로튼 토마토 95%.
아카데미 3개 부문 수상. 촬영, 미술, 분장.
작품상 후보에도 올랐다. 외국어 영화로서는 드물다.
흥행도 잘했다. 제작비 1900만 달러, 전 세계 8300만 달러.
동화의 잔혹함
원래 동화는 잔혹하다. 그림 형제 원본 보면 안다. 피, 폭력, 죽음.
<판의 미로>는 그걸 되살렸다. 동화 본래의 어두움.
오필리아의 여정은 성장 이야기다.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는. 순수함을 지키면서.
세 가지 시험은 통과의례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유혹을 거부하고, 희생을 선택한다.
마지막에 자기 피를 흘린다. 동생 대신. 그게 진짜 공주의 증명이다.
현실에선 죽지만, 환상에선 산다. 어느 게 진실인가?
둘 다일 수도 있다. 환상이 오필리아한테는 진짜니까. 그게 그녀를 지탱했으니까.
델 토로가 말하는 거다. 환상은 도피가 아니라 생존 방식이라고.
잔혹한 현실 속에서, 상상력이 우리를 지킨다고.
<판의 미로>는 완벽한 영화다. 거의.
느린 부분이 좀 있다. 중반부. 근데 견딜 만하다.
잔혹한 장면이 많다. 15세 관람가인데, 실제론 더 무섭다. 어린이한테는 트라우마다.
근데 그 잔혹함이 필요하다. 현실의 폭력을 보여주려면.
스페인어 영화다. 자막 읽어야 한다. 근데 문제없다. 시각적으로 강렬하니까.
델 토로 최고 작품이다. <셰이프 오브 워터>보다 좋다. 개인적으로.
더 순수하다. 더 잔혹하다. 더 아름답다.
영화 보고 나면 뭔가 많은 감정이 남는다. 슬픔, 아름다움, 공포. 다 섞여서.
오필리아의 얼굴이 기억난다. 마지막 미소.
그녀는 행복했을까? 죽었지만?
아마 그랬을 거다. 자기 세계로 돌아갔으니까.
그게 위로인가? 모르겠다.
근데 그게 전부다. 때로는.
잔혹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가진 건 상상력뿐이다.
<판의 미로>는 그걸 보여준다.
아프지만 아름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