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컴플리트 언노운 - 무한히 새로워지는 이야기

by lazypenguinclub 2025. 9. 11.
반응형

컴플리트 언노운

1960년대 뉴욕. 거리는 낡았고, 공기는 무거웠다. 냉전, 불안, 방향을 잃은 청춘들. 근데 이상하게도 그 속에서 사람들은 노래했다.

작은 클럽, 카페 구석에서 누군가가 기타를 쳤다. 아직은 낯선 얼굴. 곧 세상의 귀를 사로잡을 청년. 밥 딜런.

제임스 망골드 감독 작품이다. 티모시 샬라메가 밥 딜런을 연기한다. 2024년 영화.

영화는 딜런의 전 생애를 다루지 않는다. 그가 '밥 딜런'이 되기 전, 그 순간에 집중한다.

1961년, 미네소타에서 온 스무 살 청년. 기타 하나 메고 뉴욕에 온다. 그리니치 빌리지. 포크 음악의 심장.

작은 클럽에서 공연한다. 관객은 별로 없다. 담배 연기 자욱하고, 술 냄새 나고. 근데 딜런은 노래한다.

목소리가 특이하다. 예쁘지 않다. 거칠고, 비음 섞이고. 근데... 뭔가 있다. 사람들이 듣는다. 정말로.

영화는 이 시기를 천천히 보여준다. 화려한 성공담이 아니라 그 이전의 시간들. 가사 한 줄 고치려고 밤새고, 공연 기회 얻으려고 돌아다니고.

우디 거스리를 만나러 간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전설적인 포크 가수. 딜런이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른다. 거스리가 들어준다. 말은 거의 못 하지만, 표정으로 인정한다.

그 장면이 좋았다. 세대가 교차하는 순간.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만나는 지점.

샬라메가 살아낸 딜런

샬라메가는 밥 딜런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밥 딜런으로 살고 있었다.

걸음걸이부터 다르다. 어깨를 굽히고, 비틀거리듯 걷는다. 말투도 그렇다. 중얼거리고, 시선을 피하고, 답을 얼버무린다.

노래도 직접 불렀다고 한다. 립싱크가 아니라. 기타도 직접 쳤고. 그게 느껴진다. 무대 위 몸의 긴장감, 호흡, 땀. 연기가 아니라 진짜 공연 같다.

"블로윈 인 더 윈드"를 부르는 장면. 카메라가 샬라메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노래하면서 표정이 계속 바뀐다. 집중하다가, 어딘가로 떠나다가, 다시 돌아온다.

관객이 조용히 듣는다. 숨소리도 안 들린다. 노래가 끝나고... 침묵. 그리고 박수.

이 장면 보면서 소름 돋았다.

"마스터스 오브 워"도 있다. 전쟁을 비판하는 노래. 샬라메가 부른다. 분노가 느껴진다. 근데 과하지 않다. 억누르면서도 터져 나오는 그 감정.

딜런을 흉내 낸 게 아니라 이해한 거다. 샬라메가 딜런을 공부했다는 게 보인다. 몇 년을 준비했다고 하던데, 그 시간이 화면에 담겼다.

사람들이 딜런을 부른다. "세대의 목소리". 딜런은 싫어한다.

기자가 묻는다. "당신 노래가 시대를 대변한다고 생각하나?" 딜런이 대답한다. "난 그냥 노래 쓸 뿐이야."

근데 사람들은 계속 의미를 찾는다. 가사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메시지를 찾고. 딜런은 도망친다. 그 무게에서.

19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 딜런이 일렉트릭 기타를 든다. 포크 순수주의자들이 야유한다. 배신이라고. 딜런은 신경 안 쓴다. 아니, 쓰는데 표현 안 한다.

영화는 이 갈등을 잘 담았다. 예술가와 대중 사이의 긴장. 딜런은 변하고 싶었고, 대중은 그대로 있길 원했다.

조운 바에즈가 나온다. 당시 유명한 포크 가수. 딜런과 연인 관계였다고 알려진. 영화에서 둘의 관계가 복잡하게 그려진다. 사랑? 경쟁? 동료애? 명확하지 않다. 근데 그게 현실적이다. 관계가 원래 그렇다.

영화가 시대를 잘 살렸다. 뉴욕 거리, 작은 클럽, 낡은 아파트. 색감도 그때 느낌이다. 채도 낮고, 거칠고.

담배 연기가 항상 있다. 모든 장면에. 카페에서도, 클럽에서도, 집에서도. 그게 시대다.

옷도 그렇다. 청바지, 재킷, 부츠. 단순하지만 멋있다. 과장 없이.

음악이 계속 흐른다. 당연하다. 딜런 영화니까. 근데 BGM처럼 깔리는 게 아니라 장면의 일부다. 인물들이 직접 부르고, 듣고, 반응한다.

녹음실 장면도 좋았다. 뮤지션들이 모여서 연습한다. 한 번에 안 된다. 계속 반복한다. 실수하고, 다시 시작하고. 완벽한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과정. 그게 흥미로웠다.

망골드 감독은 음악 영화를 잘 만든다. <워크 더 라인>도 그랬고. 뮤지션의 삶을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많은 전기 영화가 주인공을 영웅으로 만든다. 근데 이 영화는 안 그렇다.

딜런은 완벽하지 않다. 자기중심적이고, 무례할 때도 있고, 상처도 준다. 주변 사람들한테. 여자들과의 관계도 복잡하다. 진심인지 이용하는 건지 애매하다. 딜런 본인도 모를 수도 있다.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건강 안 챙긴다. 오토바이 사고도 난다.

영화는 이런 것들을 숨기지 않는다. 천재의 어두운 면까지 보여준다. 근데 그래서 더 인간적이다. 완벽한 전설보다 결함 있는 사람이 공감 가니까.

인터뷰 장면들이 많다. 기자들이 질문한다. 딜런은 제대로 대답 안 한다. 빙빙 돌리거나, 장난치거나, 아예 다른 이야기를 한다. 처음엔 웃긴다. 근데 계속 보면... 방어다. 자기를 지키는 방법.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딜런이 대답한다. "나도 모르겠어."

그게 이 영화의 핵심인 것 같다. 정체성에 대한 질문. 딜런도 자기가 누군지 몰랐다. 계속 찾아가는 중이었다.

이 영화가 완벽한 건 아니다. 문제도 있다.

러닝타임이 길다. 2시간 반 넘는다. 중간에 좀 늘어진다. 반복되는 느낌도 있고. 딜런 아닌 다른 인물들이 입체적이지 않다. 조운 바에즈도, 주변 뮤지션들도. 좀 더 깊이 다뤘으면 좋았을 텐데.

시대 배경 설명도 부족하다. 1960년대가 왜 중요했는지, 포크 음악이 왜 부흥했는지. 이미 아는 사람한테는 괜찮은데, 모르는 사람은 어려울 수도 있다.

근데 이런 것들이 치명적이진 않았다. 샬라메의 연기와 음악이 다 커버한다.

OST가 좋다. 당연하다. 딜런 노래니까. 근데 샬라메 버전이 원곡과 다른 느낌이다. 더 날것 같다. 덜 다듬어진. 그게 오히려 좋았다. 젊은 딜런의 거칠음이 느껴진다.

영화 보고 나서 딜런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Like a Rolling Stone" 들었다. 새롭게 들렸다.

결국 이 영화는 묻는다. 목소리를 가진다는 게 뭔지.

딜런은 자기 목소리를 찾았다. 근데 그 목소리가 짐이 됐다. 사람들이 그 목소리로 시대를 말하길 원했으니까. 예술가의 딜레마다. 자기 것을 표현하고 싶은데, 그게 대중의 것이 돼버린다.

딜런은 도망쳤다.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컨트리로 갔다가, 복음성가를 했다가. 계속 변했다. 그게 자유였을까, 아니면 또 다른 감옥이었을까.

영화는 답을 안 준다. 그냥 질문만 남긴다.

샬라메가 이 역할로 커리어를 확실히 올렸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듄> 이후 또 한 번 증명했다. 연기 잘한다는 걸. 망골드 감독도 마찬가지다. 음악 영화의 대가임을 다시 보여줬다.

<컴플리트 언노운>은 좋은 영화다. 완벽하진 않지만, 기억에 남는다. 밥 딜런을 모르는 사람도 볼 만하다. 한 시대, 한 사람의 이야기로도 충분히 흥미롭다. 알고 보면 더 좋고.

극장 나오면서 생각했다. 나는 무슨 목소리를 내고 있나. 그런 질문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