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플리트 언노운〉 리뷰 – 밥 딜런의 초상, 혹은 한 시대의 자화상
1960년대 뉴욕: 불안 속에서 태어난 목소리
영화의 시작은 1960년대 초 뉴욕. 거리는 낡았고, 공기는 무거웠습니다. 냉전의 긴장, 전후의 불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청춘들이 거리에 가득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안에서 사람들은 노래하고, 말하고, 기타를 울렸습니다.
특히 작은 클럽, 카페 구석, 무대들에선 누군가의 마음이 음악으로 흘러나왔습니다. 그중 한 명. 아직은 낯선 얼굴입니다 그러나 곧 세상의 귀를 사로잡게 될 한 청년. 바로 밥 딜런입니다.
이 영화는 딜런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목소리’가 되어갔는지를 차분하게 따라갑니다. 떠들썩한 성공 신화가 아니라, 그 목소리가 자라난 배경과 침묵 사이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천천히 밥 딜런을 보여줍니다. 덕분에 우리는 단순히 “그 시절 뉴욕은 멋졌어”라는 낭만 너머를 보게 됩니다. 담배 연기 자욱한 실내, 낡은 스피커, 그리고 가사 한 줄을 고치기 위해 몇 시간을 고민하는 뒷모습까지, 그 시대를 느낄 수 있습니다.
티모시 샬라메 – 단순한 연기를 넘어선 체화
사실 밥 딜런이라는 인물을 연기한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도전입니다. 너무 잘 알려졌고, 너무 특별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티모시 샬라메는 그걸 정면으로 받아냅니다.
그는 겉모습을 흉내 내는 데 그치지 않고, 무대에서의 태도, 무심한 말투, 시선을 피하는 버릇, 그리고 인터뷰에서의 모호한 대답까지 모든 것을 닮으려고 애쓴 것 같습니다. 그냥 ‘비슷하다’가 아니라, ‘살고 있다’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기타도, 노래도 모두 직접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 인상적인 건, 그의 딜런이 ‘정확하게’ 닮았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흐릿함’마저 닮았다는 겁니다.
영화 내내 그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사람은 딜런을 흉내 내는 게 아니라, 딜런의 껍질을 입고 그 안에서 진짜 고민하고 있구나.”
음악이 곧 삶이던 순간들
컴플리트 언노운은 전형적인 전기 영화처럼 딜런의 인생 전체를 다루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가 아직 ‘밥 딜런’이 되기 전, 그 전환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블로윈 인 더 윈드” 같은 노래가 단순히 멜로디가 아니라, 시대의 질문이자 대답이었던 시절 말입니다.
음악 장면들도 그저 ‘명곡을 들려주는 장면’이 아닙니다. 기타 줄이 떨리는 모습, 관객의 숨죽인 표정, 노랫말을 삼키는 목소리, 이 모든 게 모여서 음악을 ‘삶’으로 만듭니다. 감상용 음악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에게는 살아남기 위한 언어였던 것입니다.
전설과 인간 사이, 그 복잡한 균형
많은 전기 영화가 한 인물을 영웅화하거나, 반대로 파괴된 천재로 그리곤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중간인, 애매하고도 인간적인 지점을 붙잡습니다.
딜런은 자신의 재능을 알고는 있지만, 그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지 못합니다. 언론과 팬들은 그를 “세대의 목소리”라 부르지만, 그는 그 이름에서 도망칩니다. 그 목소리를 듣고 싶어 했던 시대가 있었지만, 정작 그는 그 목소리를 내려놓고 싶어 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한 것 같습니다.
샬라메의 연기는 바로 이 ‘거절하고 싶은 찬사’의 무게를 잘 담아냅니다. 그래서 관객은 딜런을 우러러보는 대신, 그냥 한 사람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흔들리고, 고민하고, 벗어나고 싶어 했던 그 청년으로 말입니다.
결론 – 목소리를 가진다는 건 무엇인가
컴플리트 언노운은 그저 밥 딜런이라는 전설을 재조명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목소리로 살아가고 있나요?”
샬라메와 망골드 감독은 함께 1960년대의 감정, 그 복잡했던 온도, 그리고 ‘세대를 대표한다는 부담’을 섬세하게 포착해냅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그냥 좋은 영화였다는 감상보다는, 뭔가 말하고 싶은 기분이 듭니다. 나는 나의 시대에 어떤 이야기를 남길 수 있을까?
이건 단순한 음악 영화가 아니라, 거대한 질문 하나를 품은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아마도 오늘 우리에게 더 필요한 질문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