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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래빗 - 아이의 눈으로 본 전쟁

by lazypenguinclub 2025.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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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속의 증오를 무너뜨리기

〈조조 래빗〉을 봤다.
히틀러가 웃겨 죽을 뻔했다.

2차 세계대전 영화인데, 그 속에서 나는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 본인이 히틀러 역을 맡은 순간부터 그건 결정되었다.

이 영화는 전쟁을 아이의 눈으로 본다.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는 10살 나치 소년이다.

열성적이고 광적이고 증오로 가득 차 있다고 자신은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그는 겁 많고, 토끼도 잡지 못한다. 그래서 별명이 '조조 래빗'이다.

조조의 세상은 명확하다.

나치는 옳고, 유대인은 악이고, 히틀러는 신이다.

교과서 같은 생각들. 아이는 그것을 완벽하게 내면화했다.

그런데 그의 집 벽장에 유대인 소녀 엘사(토마신 맥켄지)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순간부터 조조의 세계는 균열을 시작한다.

엘사는 인간이다. 악마가 아니다. 그냥 겁먹은 소녀일 뿐이다.

영화는 이 간단한 진실 앞에서 조조의 세뇌된 이념이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지를 보여준다.

로만 그리핀 데이비스의 연기가 이 변화를 완벽하게 표현한다.

처음에는 광신도 같던 아이가, 점점 혼란스러워하고, 생각하고, 결국 깨닫는다.

상상의 친구로서의 히틀러

조조의 옆에는 늘 상상 속 친구 히틀러(타이카 와이티티)가 있다.

처음엔 조조를 부추기는 나쁜 친구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이 히틀러는 점점 우스꽝스러워진다.

비명을 지르고, 춤을 추고, 아이 같은 투정을 부린다.

나치즘을 상징하는 존재가 계속 웃음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타이카 와이티티의 전략이다. 증오를 웃음으로 무너뜨린다.

극우주의자들이 가장 싫어할 방식이다. 진지하게 대응하기보다, 조롱하는 것.

웃음은 가장 강력한 무기다.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하는 로지(조조의 어머니)는 이 영화의 심장이다.

그녀는 나치 독재 속에서도 아들에게 자유를 가르친다.

춤을 춘다. 위험하게 도움을 준다. 인간답게 살려고 한다.

그녀의 존재만으로도 영화는 감동적이 된다.

스칼렛 요한슨은 큰 대사 없이, 그저 엄마로서의 따뜻함을 전한다.

그리고 영화 중반에 그녀에게 일어나는 일을 보면서 나는 눈물이 났다.

전쟁의 폭력이 끝내 무엇을 빼앗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순간.

블랙 코미디의 힘

〈조조 래빗〉이 성공한 이유는 블랙 코미디 때문이다.

군가를 부르는 장면, 훈련소의 황당한 상황들, 히틀러의 아이 같은 행동.

모두 웃기다. 진짜 웃긴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깊은 씁쓸함이 있다.

이것이 전쟁이다. 광기 속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그리고 우리는 그 광기를 웃음으로만 견딜 수 있다는 걸 영화는 보여준다.

조조가 깨닫는 것은 이것이다.

증오는 배운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도 배울 수 있다.

엘사와 조조의 관계는 상징적이다.

적으로 시작한 두 아이가 친구가 되고, 연대하고, 결국 서로를 지킨다.

이것이 미래 세대 간의 화해를 보여주는 것이다.

같은 시대를 살지만 다른 이념으로 만난 두 아이가, 인간으로서 만나는 순간.

그것이 가장 큰 희망이다.

전쟁의 폐허 위의 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조조와 엘사가 전쟁의 폐허 위에서 춤을 춘다.

이 장면은 상징적이다.

절망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기쁨도 계속된다. 사랑도 계속된다.

이 춤은 저항이면서 동시에 희망이다.

타이카 와이티티가 전쟁 영화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가 아닐까.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많은 것을 생각했다.

아이들이 어떻게 증오로 채워지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

조조는 열 살이다. 그는 자신이 배운 이념의 피해자이기도 하고, 가해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영화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대신 그의 변화를 보여준다.

이것이 역사에 대한 가장 따뜻한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인간들을 완전히 미워하기보다, 그들도 인간이었고, 변할 수 있었다는 걸 인정하는 것.

미루기의 거짓말

영화 속에서 로지가 말한다.

"우리는 항상 나중에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중은 오지 않는다."

전쟁은 그 '나중'을 빼앗는다.

중요한 것들을 미루다가, 결국 그것들을 영원히 잃어버린다.

이것이 영화의 또 다른 메시지다.

지금 당신이 해야 할 것이 뭔지 알고 있다면, 지금 하라는 것.

〈조조 래빗〉은 전쟁 영화지만, 동시에 성장 영화이면서 사랑 영화다.

타이카 와이티티는 가장 어두운 주제를 웃음과 따뜻함으로 다룬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메시지는 더 강력해진다.

웃음 속에서 눈물이 난다. 코미디 속에서 비극을 본다.

이것이 진정한 영화의 힘이다.

조조가 춤을 출 때, 우리도 함께 춘다.

그것이 이 영화가 주는 경험이다.

절망 속에서도 인간은 춤을 춘다.

사랑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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