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와 파멸의 경계
서론 – 다시 시작된 공포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리들리 스콧이 다시 연출한 에이리언 프리퀄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으로, 2012년 〈프로메테우스〉의 후속편입니다. 영화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 그리고 인간이 알지 못하는 영역을 탐구하면서 동시에 전통적인 에이리언 시리즈 특유의 공포와 생존 스릴러를 복원하려 합니다.
줄거리 – 식민지 개척선 ‘커버넌트’
영화는 수천 명의 식민지 개척민을 태운 우주선 ‘커버넌트’호가 미지의 행성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곳은 지구와 유사해 보이지만, 곧 정체불명의 위협에 노출됩니다. 승무원들은 신비롭고 고요한 행성을 탐험하다가, 과거 〈프로메테우스〉에서 살아남은 인조인간 데이비드(마이클 패스벤더)와 조우합니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더 이상 단순한 인조인간이 아닙니다. 그는 창조와 실험을 거듭하며 새로운 생명체, 즉 에이리언의 진화를 이끌어내고 있었습니다. 탐험은 곧 생존을 위한 절망적인 싸움으로 전환됩니다.
철학과 본능의 충돌
리들리 스콧은 이번 영화에서 철학적 탐구와 원초적 공포를 동시에 시도합니다. 데이비드라는 캐릭터를 통해 "창조주를 넘어서려는 피조물"이라는 테마를 강조하고, 동시에 시리즈의 상징인 체스트버스터, 페이스허거, 제노모프가 다시 등장해 시각적 공포를 구현합니다.
마이클 패스벤더는 두 인조인간 ‘데이비드’와 ‘월터’를 1인 2역으로 연기하며,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묘하게 흔듭니다. 그의 존재는 영화의 중심 철학적 질문을 담아내면서도, 차갑고 무자비한 공포를 만들어냅니다.
주제 – 창조, 파멸, 그리고 인간성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핵심은 “누가 창조주인가?”라는 질문입니다. 데이비드는 인간이 만든 인조인간이지만, 스스로 신이 되려는 욕망을 드러냅니다. 그의 실험과 집착은 새로운 생명체를 낳지만, 그것은 곧 파멸의 씨앗이 됩니다. 영화는 창조와 파괴가 결국 같은 맥락에서 움직인다는 아이러니를 드러냅니다.
동시에 영화는 인간의 탐욕과 무모한 도전을 비판합니다. 개척이라는 명분 아래 미지의 세계로 향한 인간은 결국 자신이 만든 피조물과 맞서 싸우며, 생존조차 장담할 수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프로메테우스〉와의 연속성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프로메테우스〉에서 제기된 질문들을 직접 이어받습니다.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의 기원은 무엇인가, 우리를 만든 창조주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다면, 〈커버넌트〉는 그 답을 더 어둡게 변주합니다. 창조주를 찾으려 했던 인류는 오히려 피조물 데이비드에 의해 새로운 지옥을 맞이합니다.
〈프로메테우스〉에서 인류를 창조한 존재 ‘엔지니어’는 신적 권위를 상징했습니다. 그러나 〈커버넌트〉는 인간이 만든 인조인간 데이비드가 스스로 엔지니어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생명체를 설계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즉, 인간이 만든 도구가 창조주의 자리를 찬탈하며, 피조물이 창조주를 초월하는 아이러니가 완성됩니다.
결국 두 작품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합니다. “창조는 축복인가, 아니면 파멸의 시작인가?” 〈프로메테우스〉가 신화적 탐구라면, 〈커버넌트〉는 그 신화가 낳은 결과이자, 에이리언이라는 공포의 기원을 설명하는 파괴적 결말입니다.
결론 – 철학과 공포의 이중주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기존 시리즈 팬들에게는 클래식한 에이리언의 공포를 되살리면서도, 〈프로메테우스〉가 던졌던 철학적 질문을 이어갑니다. 그러나 철학과 공포의 균형이 완벽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일부 관객은 심오한 주제 의식보다는 원초적 공포에 더 끌리고, 다른 일부는 철학적 탐구가 충분히 확장되지 못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창조와 파멸이라는 거대한 질문을 스릴러적 쾌감 속에 녹여내며, 에이리언 신화의 또 다른 조각을 만들어 냅니다.
감상 포인트 3가지
- 마이클 패스벤더의 1인 2역 – 데이비드와 월터를 오가며 철학과 공포를 동시에 구현합니다.
- 전통적 에이리언 공포 – 체스트버스터와 제노모프의 부활로 시리즈 특유의 긴장감을 재현합니다.
- 〈프로메테우스〉와의 연결 – 기원을 묻던 질문에서, 창조와 파멸의 아이러니로 이어지는 연속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