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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 하나만 들어줘 - 착한 사람이 가장 무서울 때

by lazypenguinclub 2025.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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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이 가장 무서울 때

〈부탁 하나만 들어줘〉.
제목부터 평범하다. 일상적이다.

그래서 더 무섭다.

2018년 개봉했을 때 포스터만 보고 가벼운 코미디인 줄 알았다.
안나 켄드릭이 웃고 있고,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선글라스 끼고 서 있고.

틀었다가 완전히 속았다.

이 영화는 겉은 세련된 블랙코미디인데, 속은 냉혹한 스릴러였다.
폴 페이그 감독이 만든 가장 날카로운 작품이었다.

이야기는 단순하게 시작한다.

싱글맘 스테파니(안나 켄드릭). 아이 하나 키우면서 육아 브이로그 찍는 평범한(?) 사람.
착하고, 친절하고, 약간 오버하는 성격.

학부모 모임에서 에밀리(블레이크 라이블리)를 만난다.
완전 다른 세계 사람이다.

에밀리는 세련됐다. 카리스마 넘친다. 패션 회사 PR 담당.
마티니 마시고, 욕도 거침없이 하고, 뭔가 위험해 보인다.

그런데 이 둘이 친해진다.

어느 날 에밀리가 전화한다.
"애 좀 봐줄래? 부탁 하나만."

스테파니는 당연히 그러겠다고 한다.

에밀리가 사라진다.

전화도 안 받고, 집에도 안 돌아오고.
남편 숀(헨리 골딩)은 당황한다. 경찰에 신고한다.

스테파니는 에밀리를 찾기 시작한다. 처음엔 걱정해서였다.
그런데 파고들수록 이상한 게 나온다.

에밀리의 삶은 거짓투성이였다.
이름도 가짜, 직장도 수상하고, 남편과의 관계도 의심스럽다.

완벽해 보이던 삶이 전부 연극이었다.

두 얼굴의 여자들

이 영화의 백미는 두 주연 배우다.

안나 켄드릭의 스테파니.
처음엔 그냥 착한 싱글맘 같다. 약간 답답할 정도로 착하다.

그런데.

중반부터 분위기가 달라진다.
에밀리를 찾으면서 스테파니의 다른 면이 드러난다.

집착. 욕망. 계산.

"어? 이 사람 착한 척한 거야?"

관객이 헷갈리기 시작하는 지점이 정확하다.

블레이크 라이블리의 에밀리는 처음부터 수상하다.
너무 완벽하다. 너무 세련됐다.

그런데 왜인지 매력적이다.

에밀리가 입는 옷만 봐도 영화다.
남성복 스타일 수트, 스트라이프 셔츠, 선글라스.
모든 장면이 패션 화보 같다.

감독이 의도한 거다. 겉모습으로 속을 감추는 캐릭터니까.

실종된 후 등장하는 에밀리의 과거 이야기들.
쌍둥이 동생, 보험금 사기, 위조된 신분.

"아, 이 사람 진짜 뭐야?"

매 장면마다 반전이 나온다.

원작은 다르세이 벨의 소설이다. 읽어봤는데, 영화보다 훨씬 어둡다.

소설은 세 명의 시점으로 쓰여 있다.
스테파니, 에밀리, 숀.
각자의 내면 독백이 나오면서 심리전이 치밀하게 펼쳐진다.

특히 스테파니의 독백이 소름 돋는다.
겉으로는 착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계산하고 질투하고 욕망한다.

영화는 이런 심리 묘사를 줄였다.
대신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표정, 행동, 분위기로.

결말도 다르다.

소설의 결말은 냉혹하다.
에밀리의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스테파니 역시 결코 선한 사람이 아니라는 게 확실해진다.
독자는 불편함을 느낀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영화는 좀 더 가볍게 처리한다.
블랙코미디 톤을 유지하면서 통쾌한 복수로 끝낸다.
대중적이다. 보기 편하다.

그래서 호불호가 갈린다.

원작 팬들은 "너무 가볍게 만들었다"고 하고,
영화만 본 사람들은 "딱 적당하다"고 한다.

나는? 둘 다 장점이 있다고 본다.

소설은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파고든다.
영화는 같은 이야기를 세련되고 재밌게 풀어낸다.

취향 차이인 것 같다.

감상 포인트

이 영화를 볼 때 주목할 것들.

1. 두 배우의 대결

안나 켄드릭과 블레이크 라이블리의 케미.
천진난만함 vs 카리스마.

두 사람이 마티니 마시면서 대화하는 장면들이 압권이다.
말은 친근하게 하는데 눈빛은 서로를 관찰한다.

누가 누구를 이용하는 걸까?
끝까지 봐도 헷갈린다.

2. 패션과 색감

이 영화는 눈이 즐겁다.

블레이크 라이블리의 의상만 따로 모아도 룩북이 된다.
스테파니의 파스텔 톤 스웨터와 에밀리의 샤프한 수트가 대비된다.

색감도 세련됐다.
미스터리 영화인데 화면이 우울하지 않다. 오히려 스타일리시하다.

3. 원작과 비교하는 재미

소설 읽고 영화 보면 두 배로 재밌다.
같은 사건인데 톤이 완전히 다르다.
소설은 차갑고 냉소적이고, 영화는 세련되고 유머러스하다.

어떤 버전이 더 나은지는 각자 판단할 몫.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가볍게 보기 좋은 영화다.
심오한 메시지 같은 건 없다.

하지만 재밌다.

세련된 비주얼, 배우들의 연기, 빠른 전개.
지루할 틈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착해 보이는 사람을 믿지 마라"는 교훈(?)을 준다.

스테파니는 겉으로 착하다.
에밀리는 겉으로 나쁘다.

진짜는 누구일까?

영화는 그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어쩌면 둘 다 진짜고, 둘 다 가짜인지도.

인간은 원래 그런 거니까.

마지막 장면에서 스테파니가 웃는다.
그 웃음이 선의인지, 승리인지, 광기인지.

알 수 없다.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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