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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박스 - 눈을 감아야 보이는 진실

by lazypenguinclub 2025.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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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박스〉를 봤다.

세상이 망했다. 어떤 정체불명의 존재가 나타났고, 그것을 본 사람은 죽는다. 단순하다.

하지만 규칙은 명확하다. 보면 죽는다. 따라서 살아남으려면 눈을 감아야 한다.

이 설정 자체가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맬러리(산드라 블록)는 블라인드를 쓰고 살아가야 한다. 두 아이와 함께.

그리고 강을 따라 내려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무섭다

이 영화의 공포는 특이하다.

괴물을 보여주지 않는다.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오직 '볼 수 없음' 그 자체가 공포다.

카메라는 흔들린다. 소리만 들린다. 무언가가 그곳에 있다는 암시만 있다.

관객도 그 불안감을 느낀다. 볼 수 없으니까 모든 것을 상상해야 한다.

상상이 가장 무서운 괴물이라는 걸 이 영화는 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눈을 뜨면 안 된다는 강박이 점점 커진다.

나는 화면을 봤지만, 주인공들은 눈을 감아야 한다는 모순 속에서 불편해진다.

맬러리는 처음에 냉정하다.

아이들을 '소년', '소녀'라고 부른다. 이름을 주지 않는다.

객관화된 거리감. 그것은 감정 없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것이 변한다.

아이들을 지키려고 할 때,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 책임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책임은 사랑으로 변한다.

여정 속에서 맬러리는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간다.

산드라 블록의 얼굴 표정만으로 이것이 전달된다. 눈썹 한 줄, 입가 한 번의 변화. 극한의 절제된 연기다.

흥미로운 것은 내부의 적들이다.

안전 지역으로 가는 길에 마주친 사람들. 그들 중 누군가는 정신이상자다.

눈을 감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 그것을 본 후 맛을 들인 사람.

좀비 물에서 좀비가 아닌 살아있는 인간이 더 위협적이듯, 이 영화에서도 그렇다.

정체불명의 괴물보다 불신과 배신이 더 무섭다.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인간은 서로를 의심한다.

그 의심이 뭘 만드는가. 폭력과 죽음이다.

불완전한 감각

맬러리와 아이들은 블라인드를 쓴 채 강을 내려간다.

소리로만 방향을 잡는다. 촉각으로만 장애물을 감지한다.

이것이 얼마나 취약한지 영화는 계속 보여준다.

작은 소음에도 흔들린다. 낙엽이 떨어져도 두렵다.

감각 하나를 잃어버리면 인간이 얼마나 무방비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시각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가. 그것을 빼앗겼을 때 우리는 얼마나 나약한가.

영화는 현재의 강 여행과 과거의 생존 과정을 교차 편집한다.

맬러리가 어떻게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준다.

그 과정 속에는 마더(즉, 영화 중 나타나는 또 다른 인물)라는 존재가 있다.

미친 여자라고 할 수 있지만, 영화는 그를 단순히 악인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녀도 생존했다. 그 과정에서 인간성을 잃었을 뿐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 영화를 보면서 아이들이 너무 오래 블라인드를 쓰고 있다는 게.

그것이 아동 학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생존의 문제와 인간의 존엄성 사이의 줄타기. 영화는 그것을 명확히 한다.

맬러리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그들의 시각을 빼앗는다.

그것이 옳은가. 영화는 그 질문에 쉬운 답을 주지 않는다.

영화의 결말은 희망적이다.

맬러리와 아이들이 안전한 피난처를 찾는다.

학교. 맹인들의 학교.

거기서는 눈을 감아도 된다. 아니, 눈을 감고도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이 뭘 의미하는가.

우리가 불필요한 것을 버렸을 때, 더 중요한 것들이 남는다는 걸까.

시각을 잃었을 때, 다른 감각들이 더 발달한다는 걸까.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새로운 형태

〈버드 박스〉는 전통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아니다.

좀비는 없다. 핵전쟁도 없다. 단지 '무언가'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피하는 방법은 문명의 거부다.

기술을 버리고, 눈을 감고, 본능에만 의존한다.

이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뭘 말하는가.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본다. 너무 많은 정보에 노출된다.

때로 눈을 감아야만 우리가 진짜 중요한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산드라 블록은 이 영화에서 불편하게 표현해야 한다.

움직임도 부자연스럽고, 감정도 억눌렀다.

그것이 배우의 능력을 더 보여준다.

완벽함 속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것보다, 불완전함 속에서 감정을 찾아내는 것이 더 어렵다.

그녀의 안내견(아이들을 안내하는 역할)로서의 움직임과 엄마로서의 보호본능 사이의 충돌.

그것을 블록은 표정으로만 전한다.

이 영화가 던지는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은 생존하기 위해 무엇을 버릴 수 있는가.

아이들의 시각? 다른 사람들에 대한 신뢰? 인간성 자체?

그리고 생존 후에, 우리는 다시 인간이 될 수 있는가.

영화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물을 뿐이다.

〈버드 박스〉는 새로운 형태의 공포 영화다.

직접 보여주지 않기로 선택한 그것. 그것이 가장 무섭다.

그리고 생존 영화이면서, 모성 영화이면서, 동시에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이다.

눈을 감으면 뭐가 보일까.

그것은 각자의 답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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