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사람을 살린다
〈더 폴〉을 봤다.
줄거리? 없다. 논리적 전개?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그런 것들을 무시하고, 이미지로만 말한다.
로이(리 페이스)라는 남자가 영화 촬영 중 떨어진다. 병원 침대에 누운 그는 죽고 싶다.
소녀 알렉산드리아(카틴카 운타루)가 그에게 묻는다.
"이야기 해줄래?"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로이가 만드는 이야기는 장대하다.
다섯 명의 영웅들이 폭군 오디우스에게 맞선다. 사막과 사원, 궁전과 전쟁터를 무대로 펼쳐진다.
화려하다. 너무 화려해서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인도, 남아프리카, 스페인, 이집트에서 촬영한 실제 풍경들. CG에 의존하지 않은 타르셈 싱의 선택이 여기서 빛난다.
색채가 살아있다. 금색, 푸른색, 주황색. 모든 것이 의도적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점점 어두워진다.
영웅들이 하나둘 죽어간다. 희망이 희미해진다. 오디우스는 승리한다.
이것이 로이의 내면이라는 걸 나는 깨닫는다.
그는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절망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런데 소녀가 이야기를 바꾼다.
"아니, 그 다음은 뭐예요?"
알렉산드리아는 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의 순수함이 로이의 절망을 꺾는다.
영화는 여기서 뭔가 깊은 것을 말한다.
절망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 중간일 뿐이라는 것.
상상력은 현실을 바꾸는 힘이라는 것.
소녀가 오디우스의 이야기에 개입할 때, 로이의 마음도 천천히 변해간다.
영화라는 회화
타르셈 싱은 줄거리를 믿지 않는다.
그가 믿는 것은 이미지와 감각이다.
한 장면 한 장면이 회화처럼 아름답다. 움직이는 미술 작품을 보는 기분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영화가 정말 예술인 순간이 있다. 그것이 바로 이것이다.
완벽한 구도, 자연스러운 색감, 인위적이지 않은 감정.
이런 것들이 모여 만드는 경험.
두 배우의 연기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아름다운 슬라이드쇼가 되었을 것이다.
리 페이스는 절망하는 방법을 안다.
그의 눈빛은 죽음을 향해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이야기를 만들 때, 그 눈빛은 작은 불빛을 품는다.
미세한 변화가 극을 만든다.
카틴카 운타루는 순수함을 연기하지 않는다.
그냥 순수하다. 그녀의 호기심, 그녀의 질문이 모두 진정하다.
아이가 어른의 절망에 어떻게 맞닿는지를 완벽하게 보여준다.
병실에서 펼쳐지는 현실과 영웅들의 모험이 교차한다.
로이의 신체는 병원에 있지만, 그의 영혼은 사막을 누빈다.
영화는 이 경계를 흐린다.
오디우스의 이야기가 현실이 되고, 현실이 이야기가 된다.
관객은 혼란스러워진다. 그것이 영화의 의도다.
상상과 현실이 분리될 수 없다는 걸 느끼게 하려고.
이야기의 힘
이 영화가 말하는 것은 이것이다.
이야기는 탈출이 아니다.
이야기는 현실을 견디는 방법이다.
절망한 사람이 이야기를 만들 때, 그것은 자기 치유의 과정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누군가가 들어줄 때, 그것은 구원이 된다.
로이와 알렉산드리아의 관계는 이것이다.
한 사람의 절망이 다른 사람의 순수함과 만날 때, 뭔가 기적이 일어난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나는 헷갈렸다.
뭘 봐야 하나. 뭘 느껴야 하나.
논리적인 흐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깨달았다.
이것이 논리가 아니라 감정의 영화라는 것을.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눈으로 느끼고,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영화였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나는 울었다.
로이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 순간.
절망이 희망으로 변하는 순간.
그것이 너무 아름다워서 나는 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울어본 것은 처음이다.
비극적이어서 우는 게 아니라, 아름다워서 우는 것.
영화의 본질에 대해
〈더 폴〉을 본 후로 나는 영화가 뭔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영화는 이야기를 말하는 매체다.
하지만 동시에 영화는 이미지를 통해 감정을 전하는 예술이다.
이 영화는 그 둘을 완벽하게 균형시킨다.
이야기는 느슨하지만, 이미지는 매우 강렬하다.
문법은 깨지지만, 감정은 명확하다.
이것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더 폴〉은 설명할 필요 없는 영화다.
그냥 봐야 한다. 보고 느껴야 한다.
비평이나 분석은 이 영화 앞에서 무의미해진다.
이미지들이 모든 것을 말한다.
색채가 모든 것을 전한다.
그리고 두 인물의 침묵 속 대사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
영화는 말한다.
상상 없이는 우리가 살아갈 수 없다고.
그리고 그 상상이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고.
극장을 나오면서 나는 생각했다.
내 절망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해야겠다고.
그리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줘야겠다고.
그것이 이 영화가 남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