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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 - 보이지 않아도 다 보여요

by lazypenguinclub 2025.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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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2008년 페르난두 메이렐리스 감독 작품이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을 영화화했다. 줄리안 무어, 마크 러팔로,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나온다.

칸 영화제 개막작이었다. 근데 평가는 갈렸다. 원작 팬들은 실망했고, 처음 보는 사람들은 충격받았다.

어느 날 갑자기. 한 남자가 운전 중에 앞이 안 보인다. 실명이다. 근데 일반적인 실명이 아니다. 하얗다. 눈앞이 온통 하얗다.

전염된다. 빠르게. 남자를 도와준 사람도, 병원 의사도, 의사 아내도... 아니, 의사 아내(줄리안 무어)만 안 걸린다. 유일하게.

정부가 환자들을 격리한다. 낡은 정신병원에. 군인들이 지킨다. "나오면 쏜다." 먹을 것도 제대로 안 준다. 그냥 가둬둔다.

병원 안이 지옥이 된다.

사람들이 모인다. 병원 1동에. 다들 앞이 안 보인다. 걷지도 못한다. 화장실도 못 찾는다. 더럽다. 지저분하다.

의사(마크 러팔로)가 리더 역할을 하려고 한다. 근데 안 된다. 다들 공황 상태다. 질서? 없다.

의사 아내만 볼 수 있다. 근데 숨긴다. 보인다고 하면 위험하니까. 남편 뒷바라지하는 척한다.

사람들이 계속 들어온다. 병원이 꽉 찬다. 3동까지 가득 찬다.

3동에 깡패들이 있다. 리더(가엘 가르시아 베르날)가 총을 가졌다.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른다. 근데 가지고 있다.

이들이 선언한다. "먹을 거 우리가 관리한다. 원하면 값을 내라."

처음엔 귀중품. 시계, 반지, 목걸이. 다 뺏긴다.

다음은... 여자들.

여자들을 보낸다. 3동으로. 성폭행당한다. 집단으로.

이 장면이 끔찍하다. 직접 보여주진 않는다. 근데 소리가 들린다. 비명, 울음. 카메라는 복도에 있다. 기다리는 남자들을 비춘다. 무력한 남자들.

의사 아내도 간다. 남편을 위해. 아니, 모두를 위해. 볼 수 있으니까 뭔가 할 수 있다. 리더를 죽인다. 날카로운 걸로. 찌른다.

혼란이 일어난다. 불이 난다. 3동이 불탄다. 사람들이 탈출한다. 밖으로.

군인들이 없다. 이미 도망갔다. 그들도 눈멀었으니까.

하얀 지옥

거리로 나온다. 도시가 무너졌다. 완전히.

쓰레기가 쌓였다. 시체도 있다. 차들이 충돌해있다. 사람들이 배회한다. 눈먼 채로.

폭력, 약탈, 강간. 어디서나 일어난다. 법? 질서? 사라졌다.

의사 아내가 일행을 이끈다. 의사, 선글라스 쓴 여자, 눈 가린 소년, 늙은 남자. 함께 움직인다.

슈퍼에 간다. 먹을 걸 찾으려고. 근데 다 썩었다. 아무것도 없다. 개가 먹는 걸 뺏는다. 그걸 먹는다.

의사 집으로 간다. 아파트가 엉망이다. 약탈당했다. 근데 그래도 병원보단 낫다.

씻는다. 처음으로. 욕조에 물을 받는다. 더럽다. 근데 씻는다. 같이. 서로를 씻겨준다.

이 장면이 이상하게 아름답다. 지옥 같은 상황인데, 이 순간만은 평화롭다. 인간적이다.

갑자기. 한 명씩. 볼 수 있게 된다.

처음엔 의사 아내가 혼자였다. 이제 다른 사람들도 본다. 이유는 모른다. 왔던 것처럼 간다.

거리에 사람들이 나온다. 서로 부둥켜안는다. 운다. 다시 볼 수 있다고.

근데... 도시는 여전히 망가졌다. 시체, 쓰레기, 파괴. 다 그대로다.

영화가 끝난다. 명쾌한 결말은 없다. 그냥 끝난다.

알레고리로서의 실명

이 영화는 재난 영화가 아니다. 알레고리다.

실명은 상징이다. 뭐의? 인간성 상실. 도덕의 붕괴. 문명의 허약함.

우리는 본다고 생각한다. 진실을, 현실을. 근데 실제론 눈먼 거다.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불편한 건 외면한다.

재난이 오면 어떻게 될까? 문명은 얼마나 버틸까? 이 영화는 말한다. 며칠. 길어야 며칠.

병원 장면이 핵심이다. 갇혀있다. 정부는 방치한다. 안에서 약육강식이 시작된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착취한다. 여자들이 제일 먼저 희생된다.

이게 인간의 본성인가? 영화는 묻는다. 대답은 안 준다.

의사 아내만 특별하다. 볼 수 있다. 근데 왜? 이유가 안 나온다. 원작 소설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들은 해석한다. 그녀가 인간성을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다른 사람을 돌봤기 때문이라고.

그럴 수도 있다. 확실하진 않다.

줄리안 무어 연기가 좋다. 지쳐있다. 끝까지 버틴다. 근데 한계에 다다른다. 그 피로가 얼굴에 보인다.

마크 러팔로도 그렇다. 의사지만 무력하다. 볼 수 없으니까. 자존심 상한다. 아내한테 의지해야 하니까.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완전히 악역이다. 깡패 리더. 폭력적이고, 잔인하다. 근데 그도 눈먼 사람이다. 두려운 거다. 그래서 더 잔인한 거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불편하다. 의도적으로.

화면이 흐리다. 과노출됐다. 하얗다. 실명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거다. 관객도 제대로 못 본다.

소리도 불편하다. 비명, 울음, 신음. 계속 들린다.

성폭행 장면은... 트라우마급이다. 보여주지 않아도 상상된다. 더 끔찍하다.

병원 화장실 장면도 그렇다. 더럽다. 배설물이 넘친다. 사람들이 그 위를 걷는다. 카메라가 다 담는다.

왜 이렇게 찍었을까?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려고. 안일하게 보지 못하게.

이건 오락 영화가 아니다.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인간에 대해, 사회에 대해.

원작 소설이 더 강렬하다고 한다. 안 읽어봤지만. 영화도 충분히 강렬했다.

평단 평가는 애매했다. 잘 만들었다는 평도 있고, 너무 우울하다는 평도 있고.

흥행은 안 됐다. 당연하다. 보기 힘든 영화니까.

근데 의미는 있다. 이런 영화도 필요하다. 불편해도, 우울해도.

2008년 영화인데 지금 봐도 와닿는다. 팬데믹 겪고 나니까 더 그렇다. 재난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하는지 봤으니까.

메이렐리스 감독은 <시티 오브 갓>으로 유명하다. 그것도 폭력적이고 충격적인 영화였다. 근데 에너지가 있었다. 생명력이.

<눈먼 자들의 도시>는 반대다. 죽어가는 느낌. 절망적이다.

둘 다 좋은 영화다. 근데 다르다. <시티 오브 갓>은 희망을 찾는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모르겠다. 희망이 있는지.

마지막에 시력이 돌아온다. 그게 희망인가? 아니면 또 다른 시작인가?

도시는 망가졌다. 시력 돌아온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재건해야 한다. 오래 걸린다.

트라우마도 남는다. 병원에서 겪은 일들. 지울 수 없다.

영화는 그걸 보여주지 않는다. 시력 돌아오는 데서 끝난다. 나머지는 상상에 맡긴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쉬운 영화가 아니다. 보기 힘들다. 우울하다.

근데 잊히지 않는다. 보고 나면 계속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란 뭔가, 문명이란 뭔가.

추천하긴 어렵다. 취향을 많이 탄다.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 보는 게 좋다.

좋은 영화지만,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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