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영웅들의 신화와 현실
서론 – 샤말란의 독창적 슈퍼히어로 세계
〈글래스〉는 슈퍼히어로 장르에 대한 샤말란 감독의 독창적 해석이 완성되는 지점입니다. 마블이나 DC의 영화들이 초인적 능력과 거대한 서사를 강조한다면, 샤말란은 오히려 능력을 가진 개인들의 내면과 사회적 시선, 그리고 신화화되는 과정을 탐구합니다. 〈언브레이커블〉에서 영웅의 탄생을, 〈23 아이덴티티〉에서 괴물의 출현을 다뤘다면, 〈글래스〉에서는 그들이 충돌하고, 결국 ‘영웅 신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줄거리 – 세 인물의 만남
영화는 〈23 아이덴티티〉의 괴물 ‘비스트’를 쫓는 데이비드 던(브루스 윌리스)으로 시작됩니다. 그는 여전히 도시의 어둠 속에서 범죄자를 추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곧 그는 비스트(제임스 맥어보이)와 충돌하다가 체포되고, 정신병원에 수감됩니다. 이곳에는 과거 〈언브레이커블〉의 사건으로 갇혀 있던 엘리야 프라이스, 일명 ‘미스터 글래스’(사무엘 L. 잭슨)도 있습니다.
세 인물은 정신과 의사 엘리 스테이플 박사의 관찰 아래에 놓이며, 그녀는 이들에게 자신들의 능력이 사실은 착각이나 정신적 병리일 수 있다는 의심을 주입합니다. 그러나 글래스는 이를 역이용해, 자신들의 존재가 ‘신화’로 자리 잡게 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영화는 영웅, 괴물, 천재 범죄자의 삼각 구도를 통해, 슈퍼히어로와 신화 창조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서스펜스와 정적인 긴장
샤말란은 화려한 액션보다, 긴 침묵과 인물의 대화, 느린 카메라 워크를 강조합니다. 슈퍼히어로 영화이지만, 대규모 전투 대신 좁은 병원 복도와 방 안에서 벌어지는 심리전이 중심이 됩니다. 이는 오히려 인물들의 내면과 긴장을 극대화하며, 장르의 상투성을 비껴갑니다. 제임스 맥어보이는 다중인격 연기를 통해 광기와 인간성을 동시에 보여주며, 사무엘 L. 잭슨은 냉철한 계획자이자 신화 창조자로 군림합니다.
주제 – 신화, 현실, 믿음
〈글래스〉의 주제는 “슈퍼히어로는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영화 속 사회와 의료 체계는 능력자들을 비정상으로 규정하며, 그들의 존재를 억압합니다. 그러나 글래스는 오히려 이 억압을 ‘신화 탄생의 무대’로 이용합니다. 그는 영웅과 괴물이 싸우는 장면을 세상에 노출시켜, 이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믿음을 사람들에게 심어줍니다.
이 과정은 곧 ‘신화의 힘’을 드러냅니다. 초능력이 있든 없든, 사람들은 믿음과 이야기 속에서 영웅을 만들어냅니다. 영화는 결국 초능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인간이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묻습니다.
결말 – 파괴 속에서 태어난 전설
〈글래스〉의 결말은 전형적인 히어로 영화의 클라이맥스와 다릅니다. 세 인물 모두 병원에서 죽음을 맞지만, 그들의 존재와 싸움은 영상으로 기록되어 세상에 퍼집니다. 이 장면은 슈퍼히어로 신화가 개인의 승리나 초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힘과 집단적 기억**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상징합니다. 글래스는 자신의 이름처럼 깨지기 쉬운 육체 속에서도, 결국 불멸의 신화를 창조해낸 인물이 됩니다.
배우들의 연기 – 세 축의 완성
브루스 윌리스는 데이비드 던의 침묵과 고독을 무겁게 표현하며, 슈퍼히어로의 외로움을 보여줍니다. 제임스 맥어보이는 수십 가지 인격을 자유롭게 오가며, 비스트라는 괴물이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분열임을 드러냅니다. 사무엘 L. 잭슨은 신체적으로는 부서지기 쉽지만, 지적으로는 누구보다 강인한 글래스를 카리스마 있게 연기하며, 영화 전체의 설득력을 이끌어냅니다.
결론 – 슈퍼히어로 장르에 대한 철학적 반전
〈글래스〉는 대규모 블록버스터 슈퍼히어로 영화의 문법을 따르지 않습니다. 대신 신화와 믿음, 인간의 욕망을 탐구하며, 히어로 장르를 철학적 우화로 변모시킵니다. 영화는 영웅과 괴물이 모두 죽음으로 사라지는 결말을 택하지만, 그 파괴 속에서 오히려 새로운 신화가 시작된다는 역설을 남깁니다. 이는 샤말란이 장르를 넘어 ‘슈퍼히어로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방식입니다.
감상 포인트 4가지
- 삼부작의 완결성 – 〈언브레이커블〉과 〈23 아이덴티티〉를 모두 본 후 감상하면 더욱 깊은 의미.
- 제임스 맥어보이의 연기 – 다중인격의 빠른 전환과 압도적 에너지.
- 히어로의 탈신화화 – 화려한 전투 대신 심리적 긴장과 철학적 질문에 집중.
- 결말의 반전 – 개인의 죽음 속에서 ‘신화’라는 집단적 서사가 시작되는 역설적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