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스
2019년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작품이다. <언브레이커블>(2000), <스플릿>(2016)에 이은 3부작의 완결편이다.
브루스 윌리스, 사무엘 L. 잭슨, 제임스 맥어보이가 다시 모였다. 19년 만에 이어지는 이야기.
기대가 컸다. 너무 컸다.
데이빗 던(브루스 윌리스)은 여전히 슈퍼히어로다. 아들 조셉(스펜서 트릿 클라크)과 함께 범죄자를 잡는다. 정식 경찰은 아니다. 그냥 혼자 한다.
케빈 웬델 크럼(제임스 맥어보이)을 찾는다. <스플릿>에서 소녀들을 납치했던 그 사람. 24개 인격을 가진. 또 납치를 했다. 여고생들을.
데이빗이 추적한다. 찾는다. 둘이 싸운다. 공장에서.
경찰이 온다. 둘 다 체포한다. 정신병원으로 보낸다.
거기 엘리야 프라이스(사무엘 L. 잭슨)도 있다. 미스터 글래스. <언브레이커블>의 악당. 15년 동안 갇혀있었다. 약 먹고, 휠체어에 앉아서.
세 명이 한 병원에 모인다.
엘리 스테이플 박사
스테이플 박사(사라 폴슨)가 이들을 치료한다. 3일 동안.
박사의 주장. "당신들은 슈퍼히어로가 아니에요. 망상이에요."
데이빗의 초능력? 우연이다. 아드레날린 때문이다.
케빈의 24개 인격? 해리성 정체감 장애다. 비스트? 상상이다.
엘리야의 지능? 높긴 한데 슈퍼빌런은 아니다.
박사는 설득한다.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영상을 보여준다. 당신들의 "능력"을 설명하는.
데이빗이 흔들린다. 그럴까? 내가 착각한 걸까?
케빈도 혼란스럽다. 인격들이 싸운다. 서로.
엘리야는 가만있다. 약 먹고. 멍하니.
관객도 혼란스럽다. 뭐지? 이게 슈퍼히어로 영화 맞나?
샤말란이 의도한 거다. 관객의 기대를 배신하는 거.
<언브레이커블>이 슈퍼히어로 오리진 스토리였다면, <글래스>는 해체다. 슈퍼히어로 개념 자체를 의심한다.
근데 엘리야는 가만있지 않았다.
약을 안 먹었다. 몰래 뱉었다. 정신은 멀쩡하다. 계획을 세운다.
병원 시스템을 해킹한다. 탈출 계획을 짠다. 케빈을 조종한다. 데이빗을 자극한다.
목표? 세상에 증명하는 거. 슈퍼히어로가 실재한다는 걸.
병원 밖으로 유인한다. 세 사람을. CCTV 앞에서 싸우게 만든다. 전 세계가 보게.
계획이 진행된다. 탈출한다. 병원 주차장으로.
세 사람이 싸운다. 데이빗 vs 비스트. 엘리야는 뒤에서 조종한다.
드디어다. 관객이 기다렸던 거다. 슈퍼히어로 배틀.
근데 이상하다.
규모가 작다. 주차장이다. 넓지도 않다. CG도 별로 없다. 그냥 주먹으로 때린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작게 만든다. 마블, DC 같은 거 기대했다면 실망한다.
충격적인 결말
세 명 다 죽는다.
데이빗은 익사한다. 물웅덩이에. 얼굴을 눌린다. 슈퍼히어로가 물웅덩이에 빠져 죽는다.
케빈은 총 맞는다. 경찰이 쏜다. 비스트 상태였는데, 죽기 직전 케빈으로 돌아온다. "이게... 빛인가요?" 그리고 죽는다.
엘리야는 이미 죽어있다. 데이빗이 안았을 때 벌써.
주인공 셋 다 주차장에서 죽는다. 영웅적으로도 아니다. 초라하게.
관객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다.
"뭐야 이게!" "19년을 기다렸는데!" "배신당한 기분이야!"
샤말란은 또 해버렸다. 기대를 뒤엎는 결말.
근데 반전이 또 있다.
스테이플 박사는 비밀 조직 사람이다. 슈퍼히어로를 막는 조직.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슈퍼히어로가 나타나면 제거한다. 세상이 알면 안 되니까.
세 명을 죽인 건 우연이 아니다. 계획이었다.
근데 엘리야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걸 녹화했다. CCTV로, 핸드폰으로.
조셉(데이빗 아들), 케이시(케빈이 살려준 소녀), 미세스 프라이스(엘리야 엄마)가 영상을 받는다.
세 사람이 만난다. 카페에서. 영상을 인터넷에 올린다. 전 세계로 퍼진다.
사람들이 본다. 진짜다. 슈퍼히어로가 실재한다.
엘리야가 이겼다. 죽었지만.
영화가 끝난다.
샤말란의 도박
<글래스>는 실패작이라는 평이 많다.
기대를 배신했다. 슈퍼히어로 배틀을 원했는데, 심리 드라마를 줬다.
19년을 기다렸는데, 주인공들이 주차장에서 죽는다.
근데... 샤말란이 원한 건 그거다. 전복. 해체.
슈퍼히어로 영화의 클리셰를 거부한다. 화려한 액션, 거대한 스케일, 영웅적 희생. 다 없다.
대신 현실적으로 접근한다. 슈퍼히어로가 실제로 있다면? 정부가 가만둘까? 당연히 제거하지.
미디어가 어떻게 반응할까? 믿을까? 아마 아니다. 가짜 뉴스라고 할 거다.
샤말란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그 답을 탐구한다.
문제는 재미다. 재미가 없다. 중반부가 특히 지루하다.
병원에서 대화만 계속된다. 스테이플 박사가 설교한다. 너무 길다.
액션을 기대했는데 심리 상담 받는 느낌이다.
제임스 맥어보이는 여전히 대단하다. 24개 인격을 연기한다. 순식간에 바뀐다. 목소리, 표정, 몸짓. 다 다르다.
브루스 윌리스는 늙었다. 지쳐 보인다. 캐릭터가 그런 건지, 배우가 그런 건지 모르겠다.
사무엘 L. 잭슨은 후반에 빛난다. 전반부는 거의 안 나온다. 휠체어에 앉아서 멍때리기만 한다. 근데 후반에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엘리야답게.
사라 폴슨은 어려운 역할을 잘 소화했다. 이성적인 박사. 근데 사실은 음모의 일부다.
<언브레이커블>은 걸작이었다. 조용한 슈퍼히어로 영화. 철학적이고, 아름다웠다.
<스플릿>은 반전이 충격적이었다. 마지막에 브루스 윌리스 나올 때 소름 돋았다.
<글래스>는... 애매하다. 야심찬 시도였다. 근데 성공했는지는 모르겠다.
샤말란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했다. 관객 기대 따위 신경 안 썼다.
그게 용기일까, 오만일까?
평단도 갈렸다. 천재적이라는 평, 실패작이라는 평. 반반이다.
흥행은 그럭저럭 했다. 제작비는 건졌다. 근데 기대만큼은 아니다.
<글래스>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시간이 지나면 재평가될 수도 있다. <언브레이커블>처럼. 개봉 당시엔 미지근했는데, 나중에 재평가됐다.
<글래스>도 그럴까?
모르겠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샤말란은 평범한 감독이 아니다. 예측 불가능하다. 그게 매력이자 단점이다.
<글래스>는 완벽하지 않다. 결함이 많다. 지루하고, 기대를 배신하고.
근데 시도는 흥미롭다. 슈퍼히어로 영화를 다르게 보려는.
좋아할 사람은 좋아할 거다. 싫어할 사람은 정말 싫어할 거다.
나는... 중간이다. 실망했지만, 생각할 거리는 남겼다.
3부작을 다 봤으면 볼 만하다. 어떻게 끝나는지 궁금하니까.
근데 기대치는 낮춰야 한다. 화려한 슈퍼히어로 배틀은 없다.
조용하고, 이상하고, 충격적인 영화다.
샤말란답게.